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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Sep 25. 2023

우리들의 "작은 슈퍼히어로"

드라마 <무빙>

미국 할리우드에서 태생한 슈퍼히어로 장르는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 사회 현실에서 가장 잘 녹아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슈퍼 히어로는 위기의 상황에 사람들을 구해낸다. 슈퍼 히어로는 즉, 현실 세계의 사고, 위기, 참사가 그 전제가 된다. 2000년대 초 코믹스 스파이더맨에 9/11 테러 내용이 실렸던 것처럼 슈퍼 히어로의 종주국 미국 사회도 대공황, 전쟁, 총기 난사, 테러 등이 시민의 현실과 함께해왔다. 말그대로 다이내믹 아메리카에서 기적을 가져오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향한 시민들의 염원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슈퍼히어로 장르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대형 사고와 함께 한다. 슈퍼히어로 장르의 그 본질적 특성때문에 미국형 슈퍼히어로 장르는 한국 땅에서 가장 잘 착상될 수 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사상 최악의 참사가 참 많이도 발생하는 나라 아니던가. 20세기를 식민지로서 열어젖혔고, 겨우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해방되고나서도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이 작은 땅을 두 개로 찢어놓았다. 그리고는 한국전쟁. 그 다음으로 군사정권, 민주화 투쟁을 거치며 시민의 피가 현대 역사서를 적셔놓았고, 한강의 기적이 웬걸 성과를 내면서 모두 잘 살겠나 싶더니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참사 등 급성장의 부작용으로 시민들이 또 피를 흘려야했다. 그러고는 IMF. 겨우 IMF는 극복하나 싶었으나 연평 해전, 천안함 침몰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그 '참사'라는 건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한국은 참으로 다이내믹한 '참사'의 나라가 아닐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던 내 또래 친구들이 가라앉는 배 속에 아직 갇혀있다는 생방송 뉴스를 봤었다. 그때를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매 수업을 치르고, 중식, 석식을 먹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갔다. 그 참사, 그 뉴스빼고는 별 다를 것 없는 나의 하루였지만 난 그 날 하루 종일 바랐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즈음에는 기적적으로 학생들 모두가 생환했다는 뉴스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적을 바랐다. 나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 전에도, 그 이후로도 비슷한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몇 번이나. 미국만큼이나 한국은 늘 기적, 우리만의 슈퍼히어로를 꿈꿔왔다.


  <무빙>의 한국형 슈퍼히어로는 한국의 현대사가 활동 현장이다. KAL기 폭파 사건, 96년 북한 잠수함 남침 사건, 청계천 노점상 시위 진압 사건, 김일성 사망 등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사건들에 <무빙>의 슈퍼히어로들은 존재한다. 작은 땅에서 그 자체로 혼란한 이데올로기 충돌의 시대, 그리고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운용하는 관료주의 시스템 속에 태어난 <무빙>의 슈퍼히어로는 국가가 요구하는 쓸모에 부응하기 위해, 눈 앞에 놓인 희생을 조금이라도 더 막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한다. 이들은 미국의 슈퍼히어로들처럼 전 세계, 전 지구, 전 우주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품지 않는다. 세계까지 가지 않아도, 우주까지 가지 않아도, 이 사회 속 시민들을 옥죄는 '적'은 우리 안에, 우리 가까이에, 아주 모호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작은 슈퍼히어로". 그것이 <무빙>이 정의하는 한국형 슈퍼히어로이다. 능력 때문에 국가 권력에 부응해야 하는 <무빙>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초능력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전 국가, 전 세계, 전우주를 구하겠다는 영웅심리를 갖지도 않는다. 이는 강풀 작가가 초능력을 '힘 있는 자'가 아닌 '가장 필요한 자'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작은 슈퍼히어로들은 재벌 2세도, 군인도, 킬러도 아니다. 장애인, 약자 등 소외된 이들이 우리의 슈퍼히어로다. 평범한 이들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이들에게 '초능력'이란 당장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적이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애초에 힘이 없는 자들은 자신의 초능력때문에 삶이 더 불행해진다.)


<무빙>이 보여준 한국형 슈퍼히어로는 결국 슈퍼히어로 장르란 그것이 태생한 지역의 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진창같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을 보여주는 존재가 초능력자라면, 한국형 슈퍼히어로는 한국 현대사의 여러 충돌 속의 잔부스러기에서 태어나, 비슷한 시대의 아픔을 겪는 타인을,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작은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슈퍼히어로를 연민하고 응원했다. 나와 비슷한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오히려 소외된 이들이 딱하기도 했고, 자신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미래 세대를 위해 작은 영웅심리를 품어준 것이 고마웠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늘 바라왔던 기적을 드라마가 보여주었다. 아픈 시대를 가감없이 드러내지만 다이내믹 참사 코리아를 살아내며 늘 염원해 온 슈퍼히어로의 존재를 보여주어 여전히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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