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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Sep 12. 2019

별의 추모

이상할 정도로 국기가 많이 걸려있는 나라. National Pride가 그 어디보다 강한 나라. 내가 느낀 미국이란 나라의 첫 인상이었다. 세계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미국의 도시와 한국의 도시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에 잠깐 우울했는데, 일반 가정집, 식당 앞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를 보니 그제서야 내가 미국에 오긴 왔구나 싶었다.
 9월 11일이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충격을 준 그 사건이 있던 날이다. 뉴욕 한복판에서 민간인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의 붕괴 순간 도시에 퍼진 먼지로 인해 당시 인근에 있던 사람들은 현재에도  호흡기질환을 앓고 있다.
 여기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 할 일이 있었다.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잔재한 여러 사회시스템에 항상 날 선 분노를 표하던 친구들이지만, 9/11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만큼은 그저 “historical tragedy”라고, 여느 사람들과 그때의 아픔을 공유했다. 뉴욕 인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한 친구는 9/11만 되면, 희생자의 사진을 걸어놓고 학교 자체에서 추모를 했다고 한다. 그 곳 학생들 중에는 9/11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없다고 했다. 모두가 희생자의 가족이거나, 친구거나, 지인이었다고. 인권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그들의 까다로운 입국심사, 정보부의 민간인 도청 사건 등은 한편 9/11이 미국에 얼마나 큰 영향을 지니는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중학생 때 집에서 9/11관련 다큐를 본 적이 있다. 희생자들이 당시를 회상하고, 당시 뉴스보도가 다큐멘터리에 나왔다. 동료들과 달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나오자마자 건물이 붕괴했다는 한 생존자의 증언. 뉴스 생중계 도중, 건물이 붕괴하고, 말을 잃은 앵커. 현장에 없었지만 공포감은 피부로 느껴졌었다. 끔찍한, 공포스러운 그보다도 더 신경에 깊은 영향을 주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
 Pete Davidson이라는 snl의 코미디언의 아버지도 그 때 희생된 소방관의 아버지였다.
 그들의 죽음은 미국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이고, 오늘에도 student Union빌딩 앞에는 수십개의 작은 국기가 꽃처럼 꽂혀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9/11을 추모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성조기가 그들의 추모의식을 행한다.국가적인 애도는 주로 전쟁 참전군인 등 국가의 임무, 수호와 목숨을 맞바꾼 희생자를 기릴 때 행한다. 우리는 그들을 추모할 때 국기를 사용한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더 정확히는 “자국이 아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국가적 명예로 보답하는 것이다. 국기의 사용은 그런 의미다.
 9/11의 희생자를 성조기로 추모한다는 것은, 그 사건으로 희생한 수많은 “미국인”을 추모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미국은 희생자의 극에 “외부, 곧 적”을 두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외부는 단적으로 말하면 빈 라덴일테고,  그가 가진 국가, 민족, 가치관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도 같이 한데 묶인 “적”이기도 하다. 미국인이 아니거나, 미국인이면서도 피부가 어두운,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은 9/11의 슬픔과 더불어 9/11 이후 정치권이  불어넣은 국가적 내셔널리즘의 압박 또한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민족, 국가, 피부로 인해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모두가 공포에 떨었으니까.
 9/11을 추모하는 데 국기가 쓰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테러”이니까. 국기와 함께 우리는 희생자를 추모하지만, 동시에 “적”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적은 공식적으로 사살되었다. 그러나 매년 벌어지는 국가적인 애도 속에서 그 적과 나라, 종교, 피부가 같은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당신의 죽음을 잊지않고, 우리는 —-
국가는 대부분 저 우리는 다음에 무언가를 다짐한다. 그 다짐의 목표 속에도 역시 무고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무고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이 저지른 과거 잘못의 당연한 결과라고, 미국에 대한 보복이라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며, 이에 대해 미국적인 대응을 취한다는 국가적인 내러티브는 사실상 적을 만들 뿐, 희생자에 대한 진심어린 추모를 가능하게 하는 지가 의문이다.
 수천명의 사람이 죽었다. 하루 안에. 그 사실만으로 형언이 불가한 비극이며,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평생의 상처일 것이다. 나는 오늘 그저 무고한 그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사랑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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