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혜BaekJi Aug 15. 2019

환상의 빛

상실과 치유, 가족 그 뿐만이라도

친구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바로 다음날 학교 기숙사가 있던 인천에서 전주로 가는 밤 버스를 타고 장례식에 갔다 왔다. 시험기간이었기 때문에, 또 그 다음날 아침은 아버님의 발인이 있었기 때문에 단지 지인에 불과한 내가 오래 있을 자리는 아니었다. 새벽 1시쯤에 친구와 찜질방으로 가서 시간을 보낸 뒤 새벽 6시 쯤에 전주터미널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역시 힘든 일이다. 오래 전부터 결혼식 때 찍으신 한 장의 사진 속에 새신랑만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님이었다.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아버님의 죽음은 외롭고, 쓸쓸했다. 그리고 너무 일렀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나를 제외한 세상은 거대한 리듬을 가지고 흐른다. 몇몇의 사건들로 인해 나는 그 리듬에서 벗어나 멈추고, 뒤쳐지지만 세상이 허가한 시간 안에 나는 다시 돌아와 리듬에 합류해야 한다. 일상에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 퍼지는 슬픔과 괴로움, 때로는 기쁨과 흥분이기도한 감정의 파동은 리듬에의 합류를 위해 묻어둬야 할 그 무엇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상’이란 것은 강압적이다.

영화 ‘환상의 빛’은 그러한 ‘일상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인 유미코의 일상을 뒤흔드는 두 개의 사건은 모두 초반부에 제시된다. 할머니의 실종과 남편’이쿠오’의 죽음이 그들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자신을 말리는 손녀를 뒤로하고 할머니는 고향인 시코쿠로 혼자 걸어간 후 발견 되지 않았다. 이쿠오는 어느 날 기찻길을 걷다가 뒤에서 오는 기차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치여 자살했다. 그녀는 ‘이쿠오’와의 가난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통해, 재혼한 남편 타미요와 해안마을에서 바쁘게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일상의 리듬을 따라간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문득 떠올라 계속 일상을 파고들었다.


 이 영화는 공간을 통해 일상의 종속과 탈선을 표현한다. 가장 큰 범위로는 유미코의 어린시절과 이쿠오와의 결혼생활이 깃든 오사카와 타미요와 현재의 삶을 이어나가는 해안마을이다. 행복했던 과거의 결혼생활이 든 오사카는 동시에 완전히 묻어버리지 못한 짙은 슬픔으로 젖어있는 곳이다. 휴가차 친정 어머니를 뵈러 유미코가 홀로 들른 오사카는 유미코에게 그 슬픔을 다시 상기시킨다. 오사카 안에서도 남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낸 찻집의 당시 주인으로부터 그녀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사카는 이쿠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다시 돌아온 해안마을에서 이웃 해녀가 물질하러 간 후 바다에 이는 폭풍은 그녀로 하여금 일상을 파괴하는 예상치 못한 위험을 또한 떠올리게 한다. 애써 일상의 리듬에 합류해왔던 그녀는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리, 리듬에서 뒤쳐지다 못해 완전히 탈선해버린다.

그 탈선은 ‘해안 마을’에서 공간의 변주로 또 드러난다. 새로운 일상에 바삐 적응해가는 유미코의 모습은 주로 집 안에서 비춰진다. 그녀는 목재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시아버님, 남편과 아이들 뒤에 앉아 그들을 보살핀다. 그녀는 목조 주택이 만드는 프레임 속에 머물러 있다. 언제 자신을 무너뜨릴 지 모를 가장 큰 아픔을 지니고 있기에 가장 큰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녀임에도 그녀는 가정의 기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사카에 갔다 온 후 그녀의 공간은 집을 벗어난다. 영화는 이 때부터 상대적으로 원거리에서 집 밖에서 방황하는 그녀를 비춘다. 아름다운 해안 마을 풍경 안에 그녀는 홀로 찍힌 점 같다. 무언가에 홀린 듯 관를 운구하는 일행을 따라간다. 보랏빛의 바닷가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자체로 슬픔을 말한다.


 그녀는 남편 타미요에게 울음을 터트리며 하소연한다. 이쿠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난 난 정말 모르겠어. 그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왜 기찻길을 따라 걸었는지.

한 번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영화에서 비친 그녀의 첫 울음이다. 억눌러왔던 슬픔이 비로소 일상이라는 판을 찢고 분출된다. 그녀는 완전한 탈선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슬픔의 탈선을 같이 하는 이는 일상의 남편 타미요이다. 울부짖으면서 하소연하는 그녀를 먼발치서 따라가며 그는 이러한 말을 전한다.


 “바다가 부른다고 했어. 아버지가 전에 배를 탔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편에 예쁜 빛이 보였 댔어. 빛이 깜빡 거리면서 당신을 끌어당겼다는 거야.

누구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탈선 후에 화면에는 일상으로 복귀한 여름의 유미코와 가족들이 보여진다. 유미코는 가족들의 뒤에서 그들을 지킨다. 수박에 소금(?)을 뿌려먹는 그들의 모습이 문화의 차이로 인핸 낯설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상의 무게만큼 이러한 일상의 행복함도 익숙하다. 일상의 리듬을 따르며 우리는 많은 감정들을 억눌러야 하기에 일상은 강압적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슬픔을 가지고서도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일상의 힘이다.

 타미요는 그녀의 탈선과 복귀에 동행하였다. 이는 타미요, 가족, 곧 일상이 그녀의 슬픔을 같이 나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슬픔을 나눠 가진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은 이전보다는 덜 강압적이다. 마냥 억지로 묻어버린 슬픔을 조금 해소한 자리에는 소소한 행복들이 채워진다. 큰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들에게 몇 번의 탈선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또 필수적이다. 억누른 상처는 언젠가 곪아 터져 더 큰 흉터를 남긴다. 하지만 탈선 이후 그들은 복귀해야 한다. 탈선의 끝은 삶이 없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수많은 상처와 이들을 채워주고, 이어주는 일상의 연장이 만드는 것이다. 상처 이후의 일상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슬픔을 이해하는 가족들은 이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것이며, 우울을 이겨낸 사람들은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일상을 살아가려 할 것이다. 일상의 동력은 그러한 곳에 있는 것이다. 상처는 우리 자체를 변화시키며, 다른 일상을 이어가도록 만든다. 일상은 여전하지만, 스스로가 인식하는 일상은 이전과 다르다.


다시 ‘환상의 빛’ 이야기로 돌아간다. 환상의 빛은 일상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맞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의 지닌 치유의 ‘힘’, 개인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상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상실로만 채워진 듯한 영화의 초반부에도 실은 그러한 일상의 힘이 있다.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 기억이 여전한 그녀가 그럼에도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이쿠오의 존재 때문이었다. 잠들어 있는 이쿠오의 머리 맡에 그 때의 기억이 불러 온 꿈을 털어 놓음으로써 그녀는 상실감을 나눈다. 이쿠오와의 일상이 주는 행복은 컸다.


 아무렇지 않게 남의 자전거를 훔쳐 온 남편을 유미코는 나무라지 않고, 같이 공원에서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자전거에 초록색 페인트칠을 한다. 일 터에서 돌아오지 않은 그가 보고싶어서 그의 일터를 찾아가 남편의 뒷모습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일상이 주는 행복으로 차있다. 이 행복은 해안 마을에서 가족들과 지내며 느끼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일상의 힘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가난하지만 행복해”다.

상처와 일상이 어떻게 맞물리느냐에 대해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강인한 여성 유미코와 그녀의 일상, 가족이 같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확인한다.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급류에 떠 간 복잡한 감정들에 여전히 미련을 남기고서 여전히 일상을 이어나가야 했을 때, 나는 이전에 겪었던 몹시 괴로웠던 사건들,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 때에도 항상 나는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갔다. 하지만 역시 그 순간들 이후의 나의 삶은, 일상에는 다른 무언가가 생겼다. 잃을 뻔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죄책감이란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를 알 수 있어서, 다른 이들의 잘못을 덜 타박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멀리서 지켜보며 탈선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줬다.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 이후 가족과 이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고, '환상의 빛'이 이야기하는 것들이 결국 내 삶에도 있었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삶의 경험을 더해갈수록 영화는 더 이해가 간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처음 봤을 때와 두 번 째 봤을 때가 달랐고, 더욱 슬프고, 아름다웠다. 유미코의 표정, 오사카의 풍경, 기차역, 해안 마을의 빛들이 모두 선명한 이미지로 남는다. 와닿는 게 너무도 많은 영화다. 앞으로도 나는 이영화를 계속 사랑할 것 같다.


 ' 환상의 빛 ' -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장편영화, ‘환상의 빛’은 내가 사랑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애정을 갖는 작품이다. 이유는 잘 모른다. 이 영화가 가장 우수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영상이 가진 색감, 적적함 등이 마음에 든다. 그는 가족과 일상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고요한 그의 영상의 선은 작위적이지 않고, 큰 울림이 있다. 영화 ‘환상의 빛’은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데뷔작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이 공통적으로 ‘환상의 빛’이라는 것은 신기한 우연이다. 보통 소설을 영화화하면 영화의 시간/공간 표현의 한계로 인해 소설에 못 미치는 결과물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소설만큼 아름답고 슬프다. 소설이 가진 주제를 고이 간직하여 이것이 오히려 영상으로 표현됨으로써 극대화되었다.


-본인 개인블로그에 있는 글 퍼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