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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Nov 03. 2019

My hobby is Thrifting

           그 나라의 삶의 질, GDP 수준에 따라 물가수준이 결정된다고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생수 한 병 가격이 2000원은 가볍게 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변변치 못한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곳에서 몇 달을, 그것도 학생의 입장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다. 

          끓는 물가에 허덕이는 것은 비단 외국인 뿐만은 아니다. 일종의 중고품 가게인 Thrift Store가 미국 전역에 퍼져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를 찾는다. ‘부유한’ 물가에 허덕이는 ‘부유한 나라’의 국민이 많다는 의미다. 그 ‘부’라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편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Thrift Store의 가격은 미국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가히 혁명적이다. American Eagle Outfitter, Banana Republic같은 브랜드의 옷 가격은 보통 $30은 족히 넘는데, Thrift Store에서는 $15짜리 Banana Republic 피코트를 구할 수 있다. 옷 뿐만이 아니라, 신발, 전자제품, 홈데코 용품, 가구(?!) 책, 음반 등이 판매되니 주로 의류를 취급하는 한국의 구제시장과는 구분된다. Papaerback 책이 한권에 $3-4정도다. $90-120정도 하는 스포츠브랜드 운동화도 여기서는 상태에 따라 $10-20에 구할 수 있다.

          Thrifting을 취미라 할 정도로 즐겨하는 쇼핑중독(?) 친구와 Thrift Store 체인 중 하나인 Savor를 찾았다. 그녀의 옷장을 보고 이 아이의 재정상황에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는데, 이 친구 그냥 박리다매였다. 다른 Mall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큰 규모였다. 생각보다 정돈된 분위기였다. 옷들은 사이즈, 품목 대로 옷걸이에 걸려있었고, 바닥에 옷이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근처 Forever21매장을 가면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옷들이 바닥 이곳 저곳에 널려있다. 이것이 Forever21의 파산이유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카트를 끌며 ‘가격이 적당하고, 상태가 괜찮은’ 상품을 찾아 카트에 하나씩 집어넣는다. 쇼핑중독인 내 친구는 10분 만에 스웨터 몇 벌과 바지 몇 벌로 카트를 채웠다. 생각보다 괜찮은 상품이 많았다. 중고제품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이지만, 미국의 물가를 실감한 뒤였기에 여기서 꼭 괜찮은 상품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쇼핑에 임했다.

          대학생부터 평범한 일가족까지 Thrift Store를 찾는 이들은 다양했다.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피부색도 다양했다. 그들 중에는 소위 ‘중산층’도 있을 것이고, ‘저소득층’도 있을 것이다. Thrift Store는 그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취한 방식 중 하나이다. 남이 쓴 물건을 다시 보고, 고쳐 써보는 것. 한국에서는 한 때 ‘아나바다’로 잠깐 유행했던 방식이지만, 미국에서는 Flea Marker, Thrift Store 등 중고물품 사고팔기가 단순히 트렌드가 아닌 대부분의 미국인의 생활 방식으로 굳어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1 Store이 급증했고, Thrifting은 미국인의 생활방식으로 더 공고히 자리잡았다. 

          나눔이라는 ‘합리적인 소비방식’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들이 그 ‘합리적인 소비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요인에 대해 생각한다면 꽤 씁쓸한 광경이기도 하다. 2008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은 소위 ‘월가 금융가의 탐욕과 위선’ 때문이지, 그들 말을 듣고 좋은 내집을 마련하고, 중산층이 되고 싶어 모기지론(Mortgage Loan)에 투자한 ‘미국인’들 때문이 아니다.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은 소위 ‘미국 중산층’이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보너스를 받아 챙겼다. 사태의 책임은 그들에게 있으나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책임은 고스란히 다른 미국인에게 돌아갔다. 순식간에 바뀐 가정재정상황에서 그들이 택한 생활방식 중 하나가 바로 Thrifting이다. 당연한 귀결이다. 이것이 바로 이 부유한 나라에 입이 떡 벌어지는 부유한 브랜드 상점과 Thrift Store가 대등하게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부유한 사람들은 Thrifting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 필요하니까.

          내 입을 입어 보려다가 몇몇 사람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먼저 “Sorry, Excuse me”라는 말을 건냈다. 그러면 나는 미국에서 배운 ‘눈마주치고 웃음’지으며 “sorry”, 혹은 “You’re good”등의 말을 건낸다.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풀린 약쟁이도 아니며, 물건 하나를 훔치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도둑도 아니다. 빈티지 구제를 찾으러 온 힙스터도 아니었다. 평범한, 부유하지는 않은 ‘미국’인이었다. 그렇다고 Struggle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싸고 괜찮은 상품을 찾아 이곳을 들렀을 뿐이다. 여기서 산 옷은 빨래를 해서 입어야 한다. 혹시 모르니 소독제를 뿌려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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