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만큼 현대인의 필수 물품도 없는 것 같다. 길거리에 나가면 죄다 귀에 하나씩 꽂고 있고, 이어폰은 또 그간 가장 빠른 발전을 해온 IT제품이기도 하다. 애플과 삼성 핸드폰이 수년째 디자인, 기능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 반면에, 이어폰은 한 4년만에 줄이 사라지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추가되었으니 말이다.
많이들 말하는 ux극대화의 측면에서 이뤄진 개선이다. 상용자의 편의 및 음악 감상 경험의 극대화를 위해서다. 외부 소리를 차단해 온전히 내가 선택한 음악만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마법같은 노이즈 캔슬링. 일면 사회에 대해 비관적인 인상을 주기 쉬운 기능이다. 현대사회 소통의 단절을 이야기할 때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수식을 붙여도 이상하지는 않다. 혹여 지나가는 이의 작은 인사, 부탁,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이의 구조요청도 가볍게 무시하겠다는 이기적 감정의 발현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아닐까 하고.
자유와도 엮일 수 있다. 일면 이기적이긴 하지만 이어폰을 끼는 순간 그 공간에서는 다른 누가 있든 오로지 내가 주인공이 되어버림다.defying gravity 같은 노래를 틀면 내가 초록 마녀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신 주변 공간을 해석할 자유를 온전히 지니게 된다. 음악이든, 무엇이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한편으로 그 공간을 채색해 기억공간에 저장해주기도 한다. 모두가 다니는 공간일수록, 유명한 공간일수록 그 공간의 감상이나 의미는 조금 전체주의적(?!)으로 흘러가기가 쉽다. 예를 들어, 경복궁이라는 공간은 조선시대 최고의 궁궐이라는 것 외 다른 인상을 갖기 쉽지 않다. 그럴 때 이어폰을 꽂고 Cardi B의 WAP을 듣는다고 해보자. 이 시대 최고(old)의 전통 공간과 이 시대 최고로 외설적인 노래의 합이라니. 스피커로 틀지 않으니 풍기문란도 아니다. 오롯이 혼자서 경복궁을 핫핑크 색으로 채색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소통의 단절 도구가 한편으로는 공공 공간의 일반적 해석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도록 해줄 가능성도 있다니. 하긴 알만하다. 자유는 어쩌면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절하고 싶다는 게 어쨌든 이기심이긴 하다. 나 좀 건들지마, 내가 알아서 할께 등의 말은 내 공간, 내 시간만큼은 좀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말이니까. 이어폰이라는 제품은 이러한 이기심을, 취미라는 포장지로 감싸버리는 현대의 선물이다. 그 이기심에 낀 이어폰을 통해 공간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는 선물의 소소한 부산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