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침입자?
여행지는 낯설다. 같은 나라라 하더라도 그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특성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외지인. 외지인은 현지인의 감성이나 관습을 으레 거스른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나름 '매너있는 사람'이었는데, 어딘가에서는 갑자기 깍쟁이가 되고만다. 도로에 차가 없어 시원하게 달리던 사람이 서울에 와서도 속도를 줄이지 못해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런 류의 것들.
혼자 간 제주도. 가족과 갔을 때는 렌터카로 해안도로를 달리곤 했었다. 혼자서는 '교통'마저 그 지역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배차간격이 기본 20-30분인 버스를 골라타고, 대개는 제주도민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 그러다보니 그 지역주민의 삶에 더 깊이 녹아들 수 있다. 체력 측면이나, 금전적인 측면에서 고된 일이긴 하다. 그래도 여행자가 단순히 '관광객'에 머무는 것이 아닌, 현지의 삶을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맞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몇몇 순간들이 있었다. 현지인이 되려다가,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여행자, 외지인이구나" 라고 깨닫는 순간. 더 나아가 "침입자"로 전락해 얼굴이 확 뜨거워지는 순간들.
제주 공항에서 내려 숙소를 가려면 202번을 타야 했다. 한시간동안 해안 도로를 달리는, 여행자에게는 이보다 좋은 코스도 없지만, 대중교통은 대중교통이었다. 제주도민의 대중교통. 한림, 협재를 지나면서 버스 내 만석 인원에는 여행자의 비율이 높아졌지만, 그 전까지 버스 탑승인원의 대부분은 제주도민이었다. 그들 사이에 있으니 나름 편안하게 입고 온 내 복장도 '빼박' 여행자였다. 끈나시, 린넨바지, 그리고 타투까지. 고등학생, 노인분들에 비해 내 복장은 "난 여행자요" 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대한 실수를 벌였다. 낑낑대며 기내용 캐리어를 가지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또 출발해야 하고, 버스 안 사람이 적지않다. 괜시리 마음이 급해졌다. 틱-하고 버스카드를 찍고 앞쪽에 앉을 자리를 찾고, 착석했다. 캐리어는 창가 쪽 자리에 밀어 넘기고, 바깥쪽에 앉아 숨을 골랐다. "노약자석"이었다. 앉는 것 자체가 비매너는 아니지만, 언제든 신속히 비워드려야 하는 자리. 촘촘한 정류장을 지날때마다 관광객이 들어차 앉고, 자리를 옮길 곳도 없어보였다. 관광버스같은 좌석배치여서 통로도 좁았다. “제발 노인분이 타지 않으셨으면" 괘씸하게 바랐다.
정류장을 지나면서 또 깨달았다. 제주도는 하르방이 많다. 돌하르방 말고, 진짜 하르방 말이다. 특히 공항-애월로 이르는 노선에는 상당히 많이 계신다. 눈치껏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 거동이 불편해 뵈는 그들의 앓는 소리에 제주도민의 삶에 녹아들려는, 아니 결국엔 침입해버린 외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회피다. 눈을 질끔 감고는 자는 척을 했다. (물론 쿡쿡 아픈 양심을 견디다못해 나중에는 결국 세상 불편한 자세로 캐리어를 넣은 안쪽 자리에 낑겨 앉기는 했다.)
나의 침입은 계속됐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음 목적지,“본태미술관”로 향했다. 버스로는 1시간 30분, 택시로는 20-30분이었다. 1박 2일인만큼 시간이 금이었다.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한다고 생각하고 택시를 탔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가 있었다. 버스로는 가기 힘든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서 개발되지 않은 제주만의 아기자기한 현무암 담장들을 볼 여유도 챙길 수 있다. 창문을 열어 팔을 쭉 뻗고 바람을 느끼는데 경적이 울렸다. 내가 탄 택시에서였다. 바로 앞에 트랙터가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농민인 것 같았다. 그 뒤로도 비슷한 상황이 몇번 더. 여행자를 태운 택시는 도시의 속도였고, 그 마을의 속도는 그보다 잽싸지 못했다.
여행자는 침입자. 침입자는 현지인의 삶을 참 대범하게 침범할 때가 으레 있다. 침범하다가 운 나쁘면 그들의 뾰루퉁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 침입자는 낯뜨겁기보다 도리어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괜히 기분만 잡쳤네, 하면서. 무례한 대범함.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 그렇다. 자신은 충분히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 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해방타운에서 그 마을 사람들의 불편불만을 보고 듣고 싶지는 않다. 굳이.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찾았다. 외국은 못가서다. 관광업이 주요한 제주도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겠다. 한 편으로는 도민의 시름도 들린다. 코로나 신규 감염자의 절반은 제주도민이 아닌 '여행자'라고 한다. 관광수익의 감소를 무릅쓰고라도 입도 국내여행객의 코로나 검사 의무화를 욕하는 도민도 있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제주도를 단순히 대한민국의 '여행지'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가. 어차피 떠날 도시인은 리프레시를 위해 스스로의 작은 비매너따위는 관대하게 용서해버린다. 제주도는 우리에게 "어차피 떠날 곳"이기도 하지만, 도민에게는 "어차피 살아야 하는 곳" 이다.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관광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침범하지 않는 배려를 해야하는 다양한 업에 몸을 던진 이들이 살아가는 곳, 제주다.
해방 뭐 좋다. 다만, 하르방이 많아 버스를 탈 때는 여행자가 불편함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 어떨 때는 제주의 속도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숙지해야 한다. 여행자가 침입자가 되지 않을 방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