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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Dec 02. 2021

[두바퀴]12/2

세상일에는 원래 논리가 없다

나 자신에 의해 이지메를 당할 때가 있었다. 마구 얻어맞아서 마치 교실 뒤쪽에 쭈그려앉은 학생처럼 난 늘 위축되어 있었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이지메를 당하다가 결국은 폭발하고 말았다. 의자를 던지고, 소리를 막 지르기 시작한다. 이지메 주동자를 넘어뜨리고 몸 위에 앉아 얼굴을 마구 때린다. 싸우기 시작한다. 나도 어느샌가부터 나와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죽일듯이 혐오하고 욕지꺼리와 침을 얼굴에 뱉어낸다. 누구도 중재할 수 없는 극한의 갈등상태.


그렇게 몇년을 싸우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 싸움의 목적은 뭐지? 감정소모가 너무 큰 것 같아, 지쳐. 이 감정들때문에 일상생활이 이미 어려운 지경에 이렀어.


이지메 가해자도 나도 나이를 먹어 교복도 작아졌다. 이제 교실을 나서야 할 때. 이야기를 한다. 너가 날 이지메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랑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울까. 그 아이와 나의 과거사를 짚어본다. 이 교실 바깥에 존재하는 사건들. 가족, 아버지, 사고 등 우리의 공통된 사건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의 순서를 맞추며 우리는 원인을 찾아간다.


세상 일에는 논리가 없다. 어느날 갑자기 빵 하고 아무런 의미없이 벌어진다. 그 무책임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모두 인간이 대리 속죄를 한다. 대개는 감정의 영역으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 팩트, 현실이라는 것들이 도리어 환상처럼 느껴진다. 환상은 이미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현실의 외피를 쓴 현실에 휘둘리는 내 감정은 오죽할까. 견딜 수 없이 나를 좀먹는다, 그 감정이라는 것들이.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한 시점까지 갈 수도 있다. 매몰되어버린 이상 “생각”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 극단으로 가기 전에 다시 현실요법이 필요하다. 이미 원인이 “환상”인 이상, 이 환상같은 현실을 다시 현실화시켜, 이해해야 한다. 임의적으로 벌어진 삶의 균열들을 일일이 끌어모아, 인위적으로라도 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어낸다”. 그리고 그게 이 현실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환상을 손에 잡히는 현실로 지어내는 이 처절한 노력은 물론 때로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움은 된다. 환상을 손에 잡듯 이해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고 믿을때 그것이 마치 내 통제 안에 들어온것만같아진다. 감정도 그제서야 통제 아래 들어온다.


현실요법이지만, 여전히 환상아닌가. 인위적인 인과관계가 사실이라는 법도 없고, 어찌되었든 “그저 믿는 것”, 일종의 자기최면일 뿐일테니. 이 과정도 여전히 환상이 아닐까. 환상에 환상으로 대응하는 것일테다.


그 요법이 먹혀든 이후, 감정이 통제가 가능해질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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