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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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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Dec 01. 2021

[두바퀴]12/1

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어린시절 나는 명확한 꿈이 없었다. 남들은 어렵지않게 장래희망란에 의사, 변호사, 선생님, 연예인을 써내려갔는데도 나는 그게 어려웠다. 특별히 어떤 분야에 큰 흥미가 있지도 않았고, 재능도 많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직업'을 고를 때 거의 띠 두바퀴의 시간이 걸렸다. 오랜기간동안 이리저리 흥미를 붙여보고, 짜게 식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그래도 10대까지 나는 막연하게나마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에 대한 그림은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자유분방하고, 감사하게도 나의 부모님은 늘 나의 선택을 우선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분들이 아니셨다. 덕분에 지금까지 내 삶에 있었던 큰 결정들 모두에는 내 지분이 아주 높았다. 단지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에, 잠깐 예술을 꿈으로 삼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유는 사실 그 어느 것보다 원대한 꿈이다. 자유를 위한 몇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나는 자유인이오"하며 살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용은 꽤 높았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대개는 높은 수준)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창작자가 온전한 자유를 누리며 창작을 할 수 있으려면 그는 우선 증명해야 한다. 당신들이 투자한 것보다 내 작품은 큰 효용이 있다, 라는. 10대 시절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이고 커다란 개념인 자유가 실은 세속의 물질에 완전히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곧 나의 20대였다.


20대 초반, 자유라는 꿈을 버렸다. 내 현실의 조건들은 자유를 품기에는 빈곤해보였다. 일단은 자유보다 나의 현실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자 했다. '자유'라는 꿈을 품는 것보다는 손에 잡히는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해야한다,고 최면을 걸었다. 물론 절대 잘 되지 않았다. 타고난 자유분방함을 거스르기 위해 나는 게으름을 극복해야 했는데, 게으름을 극복할 의지는 또 약했다. 분명 나는 더 작은 것을 꿈꾸기로 했는데, 어째 더 어려웠다. 하고싶은 것보다는 해야하는 것, 지금 당장의 재미보다는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선택했다. 20대 중반까지는


취준을 시작하면서 '직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다시 더 큰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뭘 잘하지, 뭘 하고싶지." 그러면서 든 생각은 사람은 타고난 성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사고과정을 되짚어보면 늘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현실의 선택지 중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을 찾아왔다. 어린시절의 막연한 꿈이 여전히 나에게 각인되어 있었고, 그 각인은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생긴대로 살라".


사람은 만드는 것보다 만들어진다는 것(이 생각조차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을 깨닫는 20대 중반이었다. 어렸던 나를 밀어부쳐 '어른인 척' 했던 20대 초반의 내가 물론 대견하다. 하지만 동시에 안타깝다. 불안이었다. 빨리 어른이 되라고 그렇게 옥죄고, 채찍질하던 것은. 그때는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늘 타협하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어깨에 진 이들이 어른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 했다. 어차피 아직 애인데 더 애답게 살다보면 어른이 자연스레 되어 있었을텐데 뭐를 왜 그렇게 나는 '포기한 것'이 많을까 생각하면 슬프다. 빼박 어른의 삶에 진입하는 현재의 나는 그때 유예한 것들은 마구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애늙은이인 척 했던 과거에 대한 벌칙같다.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꺼내 '생긴대로 살고 있는' 지금 나는 퇴보한 것일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띠를 두바퀴 돌고 참 많이도 다치면서 느낀 바, 어른은 특별한 건 없다. 다만 본인의 경험치를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다만 더 높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어느정도 통찰이 생겼다. 생긴대로 산다는 것, 나는 자유를 꿈꾸는 사람이라는 것, 이걸 바꿀 거대한 힘을 내가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 등 모든 깨달음, 혹은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통찰에 기반한다. 어른은 일단 인정하는 사람인 것이다.


어른이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세상에 '어린 꿈'은 없다는 것이 된다. 제 아무리 막연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안다면, 충분히 자신의 삶에 책임질 수 있다. 철 없는 꿈은 없다.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10대 시절의 나를 한때는 원망했다. 그 꿈은 철이 없다며 마구 억누르던 게 20대 초반의 나였다. 통찰력이 부족한데도 '어른인 척'하는 애늙은이의 실수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귀여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그 친구를 생각하면 언제나 슬퍼할 것이다. 세상 모든 짐을 어깨에 지고서도 누구의 어깨에 기대지도 못한 그 바보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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