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혜BaekJi May 31. 2020

5/30


스무살. 대학 입학 후 만난 친구와 사주를 보러 갔다. 아빠가 보지 말라했는데, 미신에 돈을 쓴다고? 라는 생각보다는 호기심이 컸다. 고등학교를 막 마친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도 궁금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서웠다.사주가 두려운 것은 그들이 하는 말이 곧 내 인생이다라는 예상보다는 타인이 정의내린 내 인생에 나 스스로를 얽매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연애운만 어느샌가부터 주구장창 물어댔다.


사주를 볼때마다 연애에 관해 물으면 그들이 하는 말은 항상 비슷했다. 사랑은 24-26살 언저리에 온다고. 그 전까지는 없거나 스치거나라고. 스물한살, 스물두살에 누군가를 미친사람 처럼 좋아하는데 마음 표현이 잘 되지 않을 때 난 스무살 때 들은 내 운명을 탓하기더 했다. 내 운명은 곧 내가 가진 조건들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스물네살이 된 지금 돌이켜보자면 결국 그 이루지 못한 사랑들은 죄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더 힘들었던 거다. 스물네살까지 내 비루했던 연애(정작 제대로 만난 인간도 없다)를 거치며 얻은 건 사람으로서 나의 성장이었다. 내가 나를 찾기 전까지 나는 타인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5월 초에 나는 한 사람과 헤어졌다. 이전에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나에게 7개월간 누구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런데 나의 그 제대로 된 첫연애는 좀 많이 특별했다. 24시간 중 그와 내가 붙어있는 시간이 곧 24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몇달을 보냈다. 미국 교환학생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그 시기에 그 아이는 내게 그 시간 그 자체였다. 지금 나는 그 아이를 “휴가같은 아이”라고 기억한다. 시작은 장난이었다 둘 다에게. 나중에 가선 둘다 이렇게 말했다. “i didnt think this would go this far” 처음엔 낯간지러웠던 i love you라는 말들에 진심이 담겼고, 곧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판타지는 현실이 되었다.


헤어진 다음에도 내 경험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나가다 마주칠 일이 전혀 없다. 그는 평생 그곳에 있을 사람이고 나도 여기에 평생 있을 사람이다. 누구 하나 미련남아도 그냥 삭이는 게 답이다. 친구로 남자고 말로는 했지만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매일 생각은 나지만 전화하는 게 문자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헤어지면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걸 알기야 하지만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그 애는 여전히 내 일상에 있었다.


옛날엔 숨은 듯 있었던 사주타로점들이 눈을 돌리면 보인다. 홍대 연남동 부근의 가게들은 아예 대놓고 트렌드다. 불확실성이 커진 이 시대에 자신의 감을 믿기보다 어느 절대자의 말이 듣고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사주는 사실 통계에 가깝고 타로도 그냥 카드놀이아닌가. 그 봐주는 사람들도 신내림받은 무당도 아니다. 연남동 근처에서 스터디가 끝나고 방송 탄 타로집을 갔다. 대기를 하고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앞에 있는 아저씨가 너무 진지하게 타로를 보고 있어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듣는 척하면서 이야기를 엿듣기도 했다.


마음 정리가 필요해서 온 것이고 난 어느정도 그아이와 나의 현재에 대한 추측을 마친 상태였다. 그 아이가 나랑 미래에 이어질 거냐고? 궁금할 리 없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연애시절 날 어떻게 여겼냐고? 안 궁금하다 우리는 그냥 사랑을 몰랐다. 실수도 많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나는 그 아이에게 항상 져줫다. 내가 궁금한 건 구냥 단 하나였다. 그 아이가 내 인생에서 어떤 아이였는지. 굳이 비싸게 이만원 내고 연애타로 볼 이유가 없다. 만원내고 간단하게 본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 내 인생에 “끝까지 남을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만날 일은 없지만 끝까지 생각나는 사람이라 했다. 희미해지더라도 생각이 나는 사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 건 정말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내 추상적인 느낌들이 그렇게 언어로 표현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제서야 한 단어로 정리가 된다. 내 느낌과 그 언어가 만나 확신이 되었다. 타인의 정의는 이럴 때 참 편리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이라는 노래를 듣는데 타로카드의 언어와 비슷했다. 늘 흘려듣던 노래 가사가 그제야 들어왔다. 24살 언저리가 되니 이제 좀 사랑을 알 때가 됐지? 싶었다. 아직까지 뭔진 모르겠다. 카드가 순수했던 사랑이라 했다. 그런 사랑을 해봣구나 싶다. 평생 생각이 날 사람이라 했다. 나에게 그가 그렇다면 그에게 나도 그럴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봉준호가 오스카 수상했다니 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