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매거진 - 서비스 기획자 편
저평가 된 '불만', 고평가 된 '아이디어'
서비스기획 일을 꿈꾸며 막연하게 가졌던 생각들이 여럿 있다. 그중 두 가지만 꺼내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서비스기획을 잘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유독 앱 서비스를 쓸 때 불만이 많았다. ‘내가 기획하면 이것보단 잘하겠다’ 하는 근자감 같은 게 항상 있었는데, 이런 성격은 실제로 서비스기획자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신규 서비스를 기획해보라’는 채용과제에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으로 아이디어를 적어 냈고, 면접을 볼 때에도 지원 기업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요목조목 꼬집어 좋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불평불만이 많은 것도 이 업계에선 능력이니,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에이스’가 되리라 다짐했다.
초반엔 먹혔다. 신입사원의 의견은 무시 못할 20대 유저의 목소리가 되어 선배 기획자들의 귀에 꽂혔으니까. 일반유저로서 느꼈던 불편사항을 직접 고치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 불편을 해결하고 나니 다른 개선점이 잘 떠오르지가 않는 거다. 기획자는 한번 맡은 서비스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함께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필요한 건 내가 아닌 남의 불편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그 사실을 실무를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불평은 누구나 할 수 있다.
2. 서비스기획은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다.
인턴 시절에는 아이디어를 내는 업무를 주로 했다. 사실 업무라기보단 과제에 가까웠는데, 대학시절 조모임하듯 인턴 동기들과 밤낮으로 토론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실무진은 실제 서비스를 굴리기 위한 운영성 업무에 주로 투입되므로, 회사는 인턴을 뽑아 신규 서비스 기획이나 개선 과제 등을 시킨다.) 2-3주간 고심한 아이디어가 윗분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으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들 그 맛에 기획을 하나 보다 했다. 정규직으로 최종 합격한 후에도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업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기획 업무에서 아이데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내 아이디어로 서비스를 만들고 나면, 그 서비스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것도 기획자인 나의 몫이거든. 버그가 생기면 잡는 것도,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대처하는 것도 모두 내 책임이다. (“책임”이라 표현한 이유는, 실제 버그픽스는 개발자가, 고객응대는 운영자가 맡아서 하지만 문제해결의 책임은 서비스를 제일 잘 아는 내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들어오는 일을 쳐내다 보면, 아이디어를 위해 고심하는 시간이 때론 사치라 느껴지기도 한다. 서비스기획자에게 아이데이션은 많고 많은 일의 시작일 뿐이다.
돌이켜 보니 서비스기획 업무는 예상을 배반하는 면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일의 보람’만큼은 예상 그 이상인데, 이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이 내가 개선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걸 우연히 봤을 때, 어제 내가 배포한 버튼을 오늘 수만 명이 눌러본 것을 지표로 확인할 때 오는 짜릿함을 어찌 예상할 수 있으랴.
글쓴이 커리부어스트
서비스 기획 / 3년차
영화와 음악, 컨텐츠와 IP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커머스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덕업일치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관심이 1도 없던 분야에 어쩌다 기획자로 발을 들이게 된 저의 솔직한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커리와 소시지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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