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느지막이 일어나고서는 늦은 밥이라도 먹고 나가기를 바라는 그! 내가 화장을 하는 동안 그는 밥을 안치고 감자와 두부를 썰어 넣고 된장찌개도 만들었다. 아참! 냉이도 몇 개 넣었다. 밥솥에서 김이 오르고 9분이 지나면 새 밥이 된다.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도 침샘을 자극하지만 이것들을 먹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참 아쉽다. 사춘기 시절의 딸처럼 신경질을 부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스트레스가 독으로 바뀌는 시간이 남보다 빠른 그를 위해 마음을 접는다. 내게 아침밥을 먹이려 했다면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났어야 했다. 종종 세상의 남편들은 아내를 엄마로 착각한다고 흉보곤 했는데 나 또한 남편을 일찍 일어나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로 착각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남편이 야무진 주부가 되기를 바라는 노후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제저녁에 먹었던 김치볶음밥을 대신 먹고 출근을 한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는데 눈썹이 한 번에 그려진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일취월장 눈썹 그리기에 김치볶음밥의 꿀꿀함이 지워졌다.
오늘은 세 쌍의 가족을 만난다. 나름 김치볶음밥 덕에 뇌에 기름칠이 되었는지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이 술술 나온다. 초음파에 보이는 아기들이 내게 주는 긍정의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꼬무락거리며 자라는 아기들이 늘 경이롭다.
결혼 4년 차의 다영이 아기를 가졌다. 명상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그들은 내가 하는 출산의 이야기들을 너무나 좋아했다. 가까운 날에 부모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었을 거다. 자연스레 아기를 가졌고 당연히 자연스레 아기를 낳겠다고 했다. 명상을 하는 부부의 아기는 어떨까? 어디서 아기를 낳던지 막연히 그들의 출산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맙게도 나와 함께 아기를 낳겠다고 했다.
아기를 받는 사람 입장이 되고 보니 다영의 날씬한 몸매가 걱정스러웠다. 임신을 유지하고 아기를 낳는 일은 체력이 필요하다. 임신 삼 개월째 다영을 만났다. 아기를 갖고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자연의 섭리만큼 후덕해졌다. 단단한 종아리와 꿀벅지를 보여주며 천진하게 웃는다. 남편보다 더 씩씩하고 튼튼하다. 엄마 될 준비를 차근히 하는 그녀가 마구 살이 찌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10킬로만 늘기로 약속했다. 건강한 먹거리와 꾸준한 운동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본이 될 것이다.
삼십 주가 코 앞, 다시 다영 부부를 만났다. 출산을 위해 아기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시점, 우선 이것을 확인했다. 그럼 그렇지! 넉넉한 양수는 벌써 아기를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자연출산에 한 걸음 다가간 것에 마음이 좋다. 꼬물거리는 손과 발, 튼실해 보이는 태반과 태반을 쳐다보고 있는 아기의 태세(attitude)도 지극히 교과서에 가깝다. 아기가 보고 있는 방향과 등을 알려주고 얼굴 쪽에다 태담을 하라고 했다. 아기는 엄마의 왼쪽에 등을 두고 있고 배꼽 오른쪽 아래 얼굴이 있다. 설명을 듣는 부부의 입이 함박꽃이다. 매번 보는 아기들에게 날마다 하게 되는 말, "신기하다! 너는 참 천재구나!" 품은 다영이나 남편 승민도 "신기"를 경험한다. 태아는 천재임을 그들도 알아가고 있다. 초산이니 끝까지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 다영 부부가 느끼는 신비함에 나의 걱정이 기대로 바뀌고 있다. 태아에 대한 신비함은 존중이고 사랑이다.
명상 선생인 다영에게 임산부를 위한 이완 스크립트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아기를 품고 아기를 위해서 써 내려간 글들은 진솔하다. 스스로에게 훌륭한 태교일 테고 나아가 다른 어미들에게도 좋은 출산 아이템이 될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삶이다. 주려고 공부를 하고, 주려고 돈을 번다.
여성의 생에서 아기를 품는 시간은 길지 않다. 허투루 보내기엔 너무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다. 어미의 하루는 아이가 살아갈 일년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무엇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떤 것을 먹었는지도 기억하라. 모든 것이 한 생명이 만들어지는데 빠지는 것이 없다. 자신의 부족함이 대물림되는 것이 두려운가. 대물림의 고리는 잉태의 순간부터 시작되며 변화는 아기품은 어미만이 할 수 있다. 이 순간도 생명은 너의 뱃속에서 자라고 생각하며 느낀다.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그대들이 이 시대의 제일 큰 희망임을 잊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