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다.
26세의 수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출산예정일 3주 전이다. 집근처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태어날 아기 크기는 3kg이 조금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수현의 출산이 기대되는 것은 임신 내내 좋은 음식을 먹었고, 가족들의 자연출산에 대한 지지가 충분하며, 매일 5000보 이상씩 걷고, 아기의 크기가 3킬로로 적당하다는 거다.
어제가 예정일, 아직 소식은 없다.
느긋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예정일이 넘어가자 가늘었던 그녀의 팔이 자꾸 생각난다. 체력이 요구되는 출산을 그 팔로 견딜 수 있을지, 예정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기의 머리는 단단해지는데 태어나면서 아두가 엄마의 골반에 맞게 응형(moulding)되기 어려워지는데...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나 혼자 만리장성을 쌓았다 부수었다 한다.
“때가 되면 나옵니다. 과일이 익은 후에야 떨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늘 예정일이 지난 산모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나와 지금의 내가 상충된다. 결국 내 속도 사실 편치 않음이다.
다행히도 예정일 하루가 지난 저녁 일곱 시, 진통 소식이 왔다. 그런데 보내온 진통 간격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부터 10분 이내 간격의 진통이오기 시작했고 한 시간 후, 6분~5분 간격, 또 한 시간 후 3 ~4분 간격으로 줄어들었다. 보통의 초산들 보다 상당히 진행은 빠르다. 20대라서 그럴까? 마치 유도분만약물을 투여 받는 산모의 진통 양상이다. 아무런 개입 없이 오는 진통이 이렇다면 초산의 진통 15시간이라는 예상을 넘어 아기를 일찍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출산 준비를 한다. 따듯한 물은 출산을 쉽게 도와주니 수중분만 풀을 준비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체력이 약해보이니 상황을 봐 가며 수중진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맞다. 진통이 짧아지고 강해지자 문자는 계속 울린다. 밤 열 시에 출산센터에 도착했다. 자궁 문이 5cm나 열려있다. 보통은 3cm 열려서 오면 잘 견딘 것인데 역시 출산준비를 잘 한 그녀는 남달랐다.
본격적으로 진통 중인 그녀는 그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석고 얼굴처럼 표정도 없다. 젊은 나이, 골반이 넉넉한 그녀의 아기 마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도 벽을 붙잡고 본능적으로 중력을 이용하고 있다. 둘라 두 명이 교대로 그녀의 안위를 살피고 도우려 하지만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미 몸은 출산에 적응한 듯 잘 움직인다. 그 누구도 감히 들어갈 틈이 없다. 일반적인 산모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수현의 행동에 모두들 어리둥절하다. 감동스럽다. 한 밤중, 어느새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둘라 두 명이 교대로 그녀의 힘주기를 돕는다. 준비했던 수중진통 풀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컸기 때문에 회음 열상을 입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아두 반출을 돕는다. 아기의 가장 큰 경선이 통과되면서는 힘을 빼야 한다.
하! 하! 하! 그녀의 호흡과 나의 호흡은 척척 들어맞았다. 머리가 나오고 예상보다 통통한 아기 몸이 나왔다. 엄마 가슴 위로 올리는데 제법 묵직하다.
예상했던3kg? 아무래도 아니다.
탯줄도 굵고 튼튼해서 10분 이상 태맥이 유지되었다. 커다랗게 보였던 수현의 배가 홀쭉해졌다. 큰 덩치의 아기가 가늘한 수현의 가슴 위에서 아빠와 눈을 맞춘다. 선한 눈빛, 찡그리지 않은 표정, 눈가가 그렁해진 아빠는 조심스레 아기의 손가락을 잡았다.
평생 이런 순간이 수 없이 지나갔는데도 매 순간이 경이롭다. 밑바닥으로부터 고마워 울컥한다.
아기는 예상 체중 3킬로보다 훨씬 큰 3.8킬로였고 신기하게도 회음 손상은 없다. 함께한 출산 둘라들도 이런한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번도 이런 출산은 본 적이 없다. 3.8킬로 아기를 초산 산모가 회음 열상 없이 아기를 낳다니! 젊은, 건강한 여성의 출산을 오랜만에 함께 하며 이십 대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염려했던 가느다란 체력은 강한 본능에 두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