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빛 그녀가 갔다.

살아가기.조산사의 삶

by 김옥진

1981년 봄, 간호대학 2학년 첫 실습 병동은 중환자실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동안 온갖 기계와 주사들이 몸에 붙어 꼼짝 못고 누워있는 의식 없는 환자들을 둘러보니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두려운 생각마져 들었다.

내게 두 환자가 맡겨졌다. 환자 두 명중 한명은 간성혼수(Hepatic coma)에 빠진, 아기를 갓 출산한 무의식 산모였다. 입에는 인공호흡기가 간신히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고 온 몸엔 수액줄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아직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는 열심히 담당 간호사 선배의 일거수 일투족을 놓지지 않으려고 바싹 붙어다녔다

마침 등 마사지를 한다하여 시트를 벗겼는데 황달때문에 온통 온 몸이 구리빛이다. 흠짓 놀람을 감추고 선배간호사가 하는 모습을 따라했다.그녀의 등은 축축한듯 했지만 따듯했다. 의식은 없어도 아기를 생각해서 얼른 일어나라고 나도 모르게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아기를 낳고 안아보지도 못한 채 중환자실에 있는 산모라니! 열 달을 준비했던 유방마저 허탈한 듯 늘어져 있었다. 오전 내내 자꾸만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정신없는 반나절이 지나고 오후 면회시간이 되었다. 남편과 친정어머니인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연신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 주며 얼른 일어나 보라고, 아기가 기다린다고 애끓는 목소리로 빌고 있다. 짧은 면회 시간동안 남편은 말이 없었다. 코끝만 빨개져서 산모의 머리만 쓰다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간호사들에게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보였다. 교대로 빨리 밥을 먹어야 한다는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습기간2주내내 편히 점심을 먹는 스테프들은 볼 수 없었다. 난생처음 중환자들을 만나니 넋이 나가 배도 안 고프고 머리만 지끈거렸다. 전천후 입맛도 맥을 못춘다. 몇 수저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하얀 시트로 그녀의 몸이 덮혀져 있었다. 담당 간호사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지경처럼 보였다. 그 날 점심은 건너 뛸 수 밖에 없다. '사망시간 열 두시 사 십분!'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린 시간이었다. 실습 첫 날 만난 산모가 몇시간 사이에 별이 되었다. 내가 밥을 꾸역꾸역 넣고 있었을 그 시간에 그녀가 숨을 거두었다. 하얀 시트가 처연하다. 몸에 달려 있던 온갖 줄들이 떼어 지고 수술 상처부위를 깨끗한 거즈로 교체되고 있다. 밥알이 곤두서는지 가슴이 답답해져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어정쩡하게 그녀 옆에 섰다. 슬쩍 손을 잡으니 아직도 따듯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보였다. 시트로 가려진 얼굴이 답답할것 같아 슬쩍 시트를 들었다 놔주는 것이 내가 마지막 가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틈새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노랗고 편안히 잠을 자는 듯 했다.

간호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아픈 것을 낫게 해주는 일도 있지만 심심찮게 죽음을 맞는 힘든 상황도 있는 거였다. 죽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21살에 처음 만난 타인의 주검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나의 첫 실습에서 만난 환자가 왜 하필 아기를 낳은 산모였을까? 왜 처음 실습 나온 나의 환자였을까? 하필 오늘이었을까? 그녀는 아기를 두고 어디로 갔을까?


취직이 잘 된다는 말에 선뜻 간호학을 선택한 내가 첫 실습 날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좀 더 행복한 직업은 없을까?
간호사로서 행복하게 일 할 곳은 없을까?


새 생명을 만날 수 있는 '분만실'을 경험한 후 나의 진로는 덕분에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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