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거르고 일터에 나갔다. 두 시간 넘도록 출산 리허설을 했다. 좋은 맘으로 돌아가는 예쁜 부부를 보내고 나니 갑자기 심한 시장기가 돌면서 근처 유명한 짬뽕이 눈에 어른거린다. 아쉽게도 가족들은 이제 막 밥을 먹었다고 한다. 짬뽕은 나중에 먹고 집밥을 먹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나의 시장기를 알렸다. 오래전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금방 한 반찬과 밥을 차려주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집에 가면 그 맛의 밥이 있을까?
작은 딸은 두부와 애호박 부쳐 나르고 남편은 계란 프라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들고 온다. 계란의 개수와 그의 사랑은 비례한다. 밥 푸고 있는 큰 딸과 눈이 마주쳤다. 덜어요? 아니! 아니! 너무 좋아 그만큼은! 밥공기 한 가득의 잡곡밥의 양도 딸의 사랑과 비례하지! 암! 암! 그렇고 말고! 하하하! 두부 부침, 애호박 부침 열 쪽씩, 써니사이드 계란 프라이 두 개, 김치 콩나물국, 열무김치, 한 공기 꽉 찬 잡곡밥! 거하게 집밥이 차려졌다. 중노동 하는 사람이 먹을 만큼의 양은 단숨에 없어졌다. 30시간 전 아기 받으며 애쓴 힘은 아직도 보충이 필요한가 보다. 어머니가 차리셨던 밥만큼 맛있다. 집밥은 말이 필요 없다.
문득 재택근무하는 동생이 생각나서 주섬주섬 반찬을 챙겼다. 딱히 맛난 반찬은 아니지만 함께 눈 마주치며 새 밥을 지어먹고 싶었다. 동생이 먹을 음식을 챙기는 분주한 내 마음이 좋다. 그 애의 깔끔한 성격은 주방을 보면 안다. 냉동실에 일 인분씩 담긴 밥 다섯 개, 냉장고에 또 일 인분씩 담긴 김치찌개, 금방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들. 베란다엔 생수가 잔뜩이다. 아들 하나 군대 가고 푸들 한 마리가 동생과 지낸다. 아내도 지금껏 직장을 다녀서 저녁에나 들어온다. 같이 재택근무를 하면 좋으련만 걔네 회사는 재택근무는 안 한단다. 함께 자라 같은 먹성, 내가 만든 음식은 엄마에게서 온 조리 방식이라 동생들 입맛에 맞다. 손질되어 파는 북어를 꺼내 엄마 맛의 북엇국을 끓이고 밥을 안쳤다. 볼 일을 보고 들어올 시간에 맞춰 밥 버튼을 누르고 가지고 온 반찬을 차렸다. 시누가 찾아와 밥하고 부엌을 뒤져서 국을 끓이는 모습이 남들 보기 낯설 수도 있지만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와~ 집밥이다" 우리는 "집밥"을 맛있게 먹었다. 함께 먹는 것이 집 밥이다.
재택근무하며 혼자 먹는 집밥은 집밥답지 않다.
먹을 것이 지천이고 전화 한 통화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대한민국 도시는 젊은이들에게 천국이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던 남녀가 혼인 후의 삶을 바뀌어 살기 쉽지 않다. 삶은 계속되고 조금씩 변화는 생긴다. 아이가 생겨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여자가 직장을 다니는 경우는 더 그렇다. 힘들게 일 하고 돌아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기가 쉽지 않다. 아기를 갖게 될 좋은 음식을 적당히 먹고, 좋은 재료의 갖가지 영양소를 먹어야 아기가 건강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녀가 보내온 오늘의 세끼는 나의 잔소리로 점점 나아지는 듯 보인다. 한식 반찬 몇 가지, 쌀밥, 여전히 그녀는 혼자서 두 끼 밥을 먹고 퇴근할 남편을 기다린다. 혼자 밥을 먹는 그녀를 위로하는 마음 반찬도 보태고 싶다. 공부만 하느라고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 한 채 어른 이 된 세상, 건강하게 자란 재료들을 사고 직접 손으로 다듬어 만든 음식을 함께 먹는 먹는 것이 하찮은 것이라고 가르친 세상은 사람들에게 밥을 혼자 먹게 한다. 함께 먹는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어릴 적 늦여름 반찬으로 즐겨 먹었던 고무마 줄기 볶음 맛은 지금도 기억에 있다. 이웃에게서 얻어 온 고구마 줄기는 엄마와 옆집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함께 산처럼 쌓인 줄기들은 금세 모두 벗겨졌다. 지루하면 우리들은 옆에 앉아 장난을 쳤다. 양쪽으로 조금씩 줄기를 꺾으면 고구마 잎 펜던트 목걸이가 된다. 먹을 것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고구마 줄기는 그렇지 않았다. 밥상 위의 고구마 줄기 볶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마늘 찧는 도마 소리가 나면 뚝딱 반찬이 만들어졌다. 식구들은 주로 들기름을 한 두 방울 넣어 고추장에 비벼먹었다. 꿀맛이었다.
마트에 갔더니 고맙게도 고구마 줄기 껍질을 까서 판다. 시장에서 고구마 잎이 달린 줄기를 사서 까면 훨씬 더 저렴하고 싱싱하겠지만 역시나 손이 덜 가는 것이 좋다. 손톱도 까맣게 물들고 양이 많으면 애써 만든 것들을 버릴 확률도 높다. 음식에 따라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해야 맛이 나는 음식들이 있는데 고구마 줄기 볶음도 그런 부류다. 우리 네 식구는 푸짐하게 손맛을 더한 고구마 줄기 볶음을 바라겠지만 이렇게밖에 만들 수 없다. 제철이 가기 전에 고구마 줄기 볶음 비빔밥을 먹자고 동생 식구들을 불러 모아 볼까 보다. 재래시장서 고구마 줄기 한 단 사 오면 푸짐하겠지. 여럿이 둘러앉아 들기름 듬쁙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는 밥상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