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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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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08. 2021

부추 호박 만두

살아가기

우중충 한 채로 하루해가 간다. 몸이 따듯한 것을 기억했는지 엄마표 만두가 떠올랐다. 호박이 간간히 열리고 부추가 농익어 가는 여름날, 엄마는 만두소를 만드느라 손이 불토록 부엌에 서 계셨다. 도마에 놓인 야채들이 춤을 춘다. 엄마의 손은 묘기를 부리며  갓 따온 호박과, 칼로 썩뚝 잘라온 부추로 만들어진 만두 맛은 초 여름이 올 때마다 자동으로 내 위장을 깨운다. 노지 야채가 나오려면 조금 더 계절이 지나야 해서 만두 거리는 시장서 구해왔다. 내 손과 발과 머리는 추억을 꺼내느라 반짝반짝거린다. 반죽을 해야지. 밀가루에 식용유를 조금 넣고 끓인 물로 익반죽을 한 후에 열심히 치댄다. 오른손 엄지가 아팠던 것도 잊었다. 팔팔 끓는 반죽 물은 손바닥 온기를 더해 숙성을 돕는다. 비닐에 20분 정도 넣어놓으면 촉촉한 밀가루 반죽이 된다. 부추와 애호박을 씻고, 자르고, 절이고, 짜낸다. 손목이 아프다. 온몸을 써야 음식이 만들어진다. 돼지고기가 가끔 씹혀줘야 만두답다. 갈아진 돼지고기에 참기름과 후추 듬쁙, 마늘과 생강을 더하여 손이 시리도록 치댄다. 뜨겁다가 시렸다가 손이 아우성이다. 계란 두 개와 감자가루 넣고 준비된 만두소 재료를 섞는다. 엄마표처럼 보이는 만두 소가 그럴싸하게 만들어졌다. 불어버린 내 손에 엄마 냄새가 배었다. 그리운 엄마 손 냄새! 차지고 부드럽게 숙성된 밀가루를 몇 번 더 치대고 적당히 덜어내어 길쭉하게 만든다. 한 입 크기 만두를 만들려고 한석봉 어머니 흉내를 냈다. 조물조물 동그란 반죽은 밀대로 다시 납작해진다.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발라 놓았다. 만두 만들기 2막이 다시 시작된다. 온 가족을 불러내어 만두를 빚는다. 서로 다른 모양새의 만두는 개성이 있다. 괜찮다. 꼬무락 손으로 만두피를 만드는  내게 잘한다고 칭찬한 엄마처럼 나도 딸들에게 칭찬을 한다. 적당히 소를 얹고 마무리된 만두는 얌전하다. 욕심을 내서 소를 많이 넣은 것은 영낙없이 터진다. 양껏 먹고 싶은 마음이 빚은 참사지만 이것도 괜찮다. 삐뚤어지고 터져버린 만두도 만두니까. 쟁반에 나란히 만두가 줄을 서니 먹은 듯 배가 부르다. 딸들은 훗날 초여름 만두 맛을 기억하며 나를 기억할까?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국물에 만두를 삶는다. 동동 만두가 뜨면 잘 익은 거라던 엄마가 생각난다. 만두 하나를 꺼내 반으로 잘라 호호 불며 엄마가 반, 내가 반, 초간장에 맛을 봤었다. 당연 잘 익었을 만두였겠지만 당신보다 먼저 내 입에 만두를 넣어주셨다. 상 위에 올려진 만두보다 부엌에서 간 보던 만두는 더 맛있었다는 사실은 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한 국물이 끓는다. 끓는 국물에 가족 수대로 빚은 만두를 넣었다. 다섯 개씩 스므개! 한소끔 국물이 넘치면 거의 다 익은 거다. 엄마가 하던 데로 간을 본다. 끓는 국물 속에서 춤을 추던 익은 만두 하나가 간택되었다. 삼등분된 만두는 호호 입김을 불어대는 여자들 입으로 들어갔다. 맛있다고 한다. 맛있다! 비가 오는 날, 만두에 더해진 칭찬에 더욱 맛갈난 만두를 먹었다. 속이 뻥 뚫어졌다.

엄마는 어린 나를 부뚜막 한편에 앉히고 만두피를 만들도록 도마와 작은 홍두깨 자루를 쥐어 주셨다. 부뚜막의 온기는 추운 날이 아님에도 싫지 않았다. 울퉁불퉁 길쭉했다가 작았다가 한 내가 만든 만두피는 엄마의 손을 거치면서 가지런해졌다. 엄마는 요술쟁이였다. 삐뚤빼뚤 내가 만든 만두피를 보고 연신 괜찮다고도 하셨다. 가끔 잘 밀어진 동그란 만두피엔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엄마의 칭찬이 진실이었을까?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두려움을 밀어내고 거침없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건 든든한 엄마의 칭찬 덕분임을 이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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