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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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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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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야기

  

 남편은 만들어 놓은 것 사다 주면 어떠냐고 한다.
굳이 일을 만들지 말라한다. 그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는다. 대파로 충분히 맛을 낼 수 있음에도 새 쪽파를 샀다. 그 요리엔 같은 파지만 쪽파가 더 어울리니까.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 새 한 가득이다. 손이 얼마나 빨리 움직여야 하는지 가늠이 되면서 긴 호흡이 몇번  오고 간다. 그래도 딸의 생일상을 차리는 것은 기쁜 일인지라 돌아 오는 발걸음은 벚꽃처럼 상큼하다.벚꽃 만발한 날에 태어난 딸은 이제 스믈 아홉해 생일을 맞았다. 대기중인 아기가 딸 생일날에 태어나면 이 마저도 도루묵이 되겠지만 몇 해 전 부터 생일상을 직접 차리기로 마음 먹었었다. 가정의 한식 생일상이 뭐 별거인가. 충분히 소박하게 차린다. 미역국,쌀밥,동태전,호박전,나물 두어가지,김,고기, 그리고 특별히 먹고 싶다고 하는 별식 하나. 이거면 됐다. 집에 있는 재료를 두고 모두 새로 사는 것은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싶기 때문이다. 새 재료에 정성을 양념으로 곁들이는 내 마음이 있어서다. 알아주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 열 살이 될 때까지 해마다 바쁜 나를 대신해 수수팥떡을 만들어 오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상 위에 팥을 펴놓고 제일 굵고 실한 팥알을 고르며 들었던 고운 생각들, 삶고 으깨며 마음속으로 빌었던 좋은 마음, 혹시나 식을새라 시간 맞추어 버스를 타고  딸내집으로 향했던 신나는 발걸음, 지금의 내 맘과 똑같지 않았을까. 병치레하지 않고 나쁜기운 들지 않게 기도하는 할머니의 마음 덕분으로 두 딸은 지금까지 잘 컸다. 그 때 어머니는 내가 그녀의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듯 보였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엄마도 행복했을 테니까.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으로 살아지고, 정성이 두 발 버팀목이 되고, 또 그 누군가의 기도로 맑아진다. 오늘의 별식은 꼴랑 김치전이다. 뭐가 특별히 먹고 싶냐고 했더니 그걸 해 달란다. 그까짓거 금방 할 수 있다. 새로 사온 재료들이 몸을 불살라 맛있는 생일상으로  차려진다. 나의 정성이 딸의 삶이된다. '맛있다'를 연발 할 딸이 조금 있으면 온다.


" 딸! 생일 축하한다. 나는 늘 네 편인거 알지?"

  할머니 핸드폰에서 들리는 벨 소리는 어린 아이가 엄마를 소리쳐 부르는 소리다. 사고 파는 인공의 소리가 아니다. 신기해 하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 할머니는  반짝이는 눈으로 조금 있으면 아버지가 될 아들이 어릴 적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했다. 허공에 눈길을 주며 젊은 시절 아들을 키우던 때를 회상하는듯 보였다. 대기 공간이 갑자기 할머니의 따듯한 사랑으로 가득해졌다. 며느리 아기 낳는 곳까지 따라온 유난떠는 극성 할머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거운 생각이 단박에 날아갔다. 아들을 키우며 주고 받은 목소리를 꼼꼼히 간직해 온 그녀의 바다 같은 사랑을 알아 채는데 걸리는 시간은 순간이었다.부러웠다.불쑥 튀어오른 미안함과 함께  나에게도 있었을 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그리워졌다.


쑥쑥 자라는 아들이 좀 더 천천히 자랐으면 하는 맘도 있었다고도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시간도 똑같이 흘러 아들은 짝을 만나서 오늘, 드디어  아버지가 된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 많은 아버지가 되는 중이다. 지금 아들은 진통하는 며느리 옆에 있다. 애간장 타는 기다림과 긴 산고 끝에 예쁜 공주가 태어났다.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 그 곳 모두의 눈길은 아기에게 있다.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 살포시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는 예쁜이는  천상의 선물이다. 할머니가 된 그녀의 주름진 손은 애쓴 며느리의 손과 겹쳐졌다. "애썼다"그녀는 슬그머니 꽃 보자기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직 양수로 촉촉한 아기의 등에 덮어 주었다. 오래된 융 배냇 저고리, 아들이 갓 태어나 입었던 배냇 저고리다. 긴 시간 고이 간직했던 배냇저고리! 또 다른 사랑을 틔울 아들에게 그녀는'정성'이라는 삶의 지혜를 대물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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