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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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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2. 2020

나도 엄마가 있었다.

엄마

엄마가 떠나신 지 10년이 지났어요. 옷장을 정리하다가 청홍 보자기에 싸여있는 엄마의 물건들을 만났어요. 좋아하시던 옷들은 용주사 뒤뜰에서 천도재를 지내며 돌려드렸는데 집에서 즐겨 입던 옷 몇 가지는 제가 가지고 있었거든요. 집에서 즐겨 입던 초록 니트도 그중 하나였어요. 세월이 흐른 빛바랜 초록색 옷이 엄마 같아서, 낡은 것은 천국서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갖고 있었죠. 코를 박고 숨을 한껏 들이켜 보아도 이제  더 이상 엄마의 냄새는 나지 않네요. 떠나보내기 싫어서 꼭꼭 감추고, 그리울 때 혼자만 꺼내 만지던 엄마의 초록 니트를 이젠 제 마음에서 내려놓으려 해요. 사시던 집은 십 년의 시간이 멈춰버린 장소가 되었어요. 신발장엔 아직도 엄마의 물건들이 그대로 있지요. 흰 샌들, 슬리퍼, 양산, 엄마의 약통도 어제 쓰셨던 것 같이 그대로 있답니다. 동생들도 감히 그 물건을 치우지 않았어요. 가끔 신발장을 열고는 엄마를 잠시 기억하다 닫곤 했었을 동생들의 마음도 보여요. 엄마의 물건들을 치우며 훌쩍거릴 시누이가 짠했는지 옥선이는 자기가 치워도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맘이 참 고운 며느리죠? 혹, 제가 갖고 있는 엄마의 물건들 때문에 평화롭고 좋다는 하늘나라 언저리에 계신 것은 아니겠죠? 누가 뭐래도 제 꿈에 자주 나타나셔서 십 년 동안 저는 참 행복했네요. 그것을 자랑삼아 떠들고 다니곤 했죠. 며칠 전, 처음으로 엄마를 꿈에서 만났다며 기서가 좋아했어요. 돌이켜보니 주책맞게도 꿈에서 엄마를 자주 만난다는 이야기를 할 때 섭섭한 티가 나기도 했던 거 같아요. 가끔은 기서도 만나러 와 주세요.

저 이사했어요. 몫 좋은,  큰, 새 집으로요. 어린 제게 나이 먹어 복이 들어오는 사주를 타고났다고 말씀하셨었지요. 젊은 시절엔 힘든 제게 용기 내라고 한 말이라 생각했어요. 돌아보니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나 봐요. 이사하고서 치우고 꾸미느라 한 동안 바빴어요. 집이 좋아서 나가기도 싫어요. 이제 저는 60살이 코앞이에요. 여러 정황들이 운 좋게 잘 풀려서 그럭저럭 쓰고 살만 해요. 살아 계셨더라면 누구보다도 제일 좋아하셨을 엄마가 오늘은 더 그립습니다. 한 턱 내라고 호탕한 말도 하셨을 거고요. 이사하면서 엄마가 못 찾아오실까 봐 영정 사진과 위패를 제일 먼저 거실 가운데에 놓았답니다. 다행히 며칠 전 젊은 엄마가 꿈에 보였어요. 새로 이사 간 집을 알고 계신 것 같아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몰라요.

어제는 기서네랑 대한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어요. 최민식과 한석규가 주인공인 조선의 장인, 장영실 이야기였죠. 역사를 꿰뚫고 있는 엄마도 좋아하셨을 줄거리였어요. 살아생전 몇 번 영화도 함께 가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표는 기서가 끊고  밥은 제가 샀어요. 들어온 짝꿍들도 물론 함께였답니다. 좋든 싫든 부부는 늘 함께여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신 거 잘 실천하고 있어요. 엄마가 제게 남기신 친구, 동생들이 있어 정말 좋아요.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어요.

좀 더 살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자꾸 생각나요. 세상이 질투 나도록 좋아지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셨죠? 이리저리 길이 뚫리고 신기한 물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지금 세상이 엄마에겐 별천지 같았을 거예요. 박봉 쪼개 사셨던 엄마보다 돈을 풍풍 써대는 저를 보고 부러워하기도 하셨죠.

저는 엄마보다 좀 더 배우고, 더 많이 사랑받고, 엄마의 남자보다 좀 더 나은 남자랑 살아요. 엄마가 갖지 못했던 전문 직업도 있고요. 엄마 딸이 보통의 남자보다 운전 잘하는 것도 아시죠? 제가 운전하고 파킹을 단 번에 하는 걸 보시곤 대견해하신 적도 많잖아요.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돌이켜보니 사주가 좋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주신 사랑 빼먹으며 살고 있었네요. 좋아하시던 초록 니트 오랜만에 입고, 양산 쓰고, 편한 샌들 신고 나들이 다녀오세요. 행복하게 살다가 만날 날, 우리 웃으며 다시 안아봐요^^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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