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침대서 기지개를 켠다. 뒹글 거리며 조금 먼저 일어난 남자에게 코기 찬열의 아침 배변을 위한 산책을 명령한다. 커피를 내리고 빵 두 개와 계란 프라이 세 개가 식탁 위에 차려지는 동안 밤새 일어난 뉴스거리를 대충 훑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뉴스가 아니고 기괴한 사건들만 즐비하여 안 보느니만 못하다. 하루 걸러, 참인 듯 거짓인듯한 뉴스를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저절로 손이 가는 걸 보면 나도 이미 인터넷에 중독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느릿느릿 식탁에 앉는다. 언제부터 모닝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보약 챙겨 먹듯 눈 뜨자마자 커피를 내리는 그에게 가끔 타박을 한다. 잘도 마시면서 그런다. 아침의 계란 요리는 매일 버라이어티 하다. 어떤 날엔 노른자가 다 익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노른자가 익지 않아 먹다가 줄줄 흘리기도 한다. 루틴과 거리가 먼, 켕기는 데로 사는 그가 참 신통하다.
11:30 am
갑자기 응급 귀국한 사촌 식구들로 인해 집안이 북적인다. 깨진 일상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리움이 가슴을 뛰게 만들고 절로 높아진 목소리는 기분 좋은 흥분을 일으킨다. 사촌을 위해 평소 안 가보던 곳도 다녀보고 오래전 추억의 거리, 안양 1번가도 함께 걷는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혼자 걸으니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단다. 즐거워하는 사십 대 중년의 사촌은 젊은 날의 길을 다시 만난다. 밤새 그림 그리던 미술학원 자리는 옷가게로 바뀌었다. 덕분에 나도 이십 대의 길을 다시 만났다. 목소리 중후한 DJ가 있는 음악다방, 어두컴컴한 곳에서'one way ticket'을 신청하고 재잘거리는 내가 있다. 용돈이 충분치 않은 우리들의 음식은 새콤달콤 쫄면이 최고 단골 메뉴였다. 시끌했던 오락실은 거의 없다. 벽돌깨기는 참 재미있었는데... 좋아하는 남자 친구와의 설레는 데이트도, 일터의 고단함도 생생하다. 변하지 않은 추억의 길 위에 딸들의 추억도 함께 남는다.
우리가 추억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지하상가에서 쇼핑하느라 즐겁다. 갖가지 옷들과 액세서리를 한 아름 안고 온 아이들의 얼굴은 싱글벙글, 의기양양이다. 지하상가의 쇼핑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소인 듯하다.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호탕하게 말하고 싶었던 내 엄마를 대신해 내가 또다시 말한다.' 뭐 갖고 싶어? 다 샀어! 더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더 사도 돼!' 사촌은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허허대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하던지! 아이에서 소녀로, 청년으로 커버린 아이들은 이제 떠날 준비를 한다. 짧은 만남은 아쉽지만 함께 기억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생겨서 참 좋다.
3:00 pm 집으로 돌아왔다.
방해받지 않는 공간은 생각을 키운다. 근사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와 나눠갖지 않아도 되는 곳, 유일하게 확장을 하지 않은 안방의 한평 베란다는 나만의 공간이다. 작은 상을 놓고 2인용 벤치도 놓았다. 창밖 멀리 산에서 바람이 온다. 비도 가지고 오고 구름도, 풀 바람도 찾아오는 나만의 공간이다. 이렇게 작아도 좋으면 좋은 거다. 널따란 거실과 침실은 생각을 헤집는다. 누우면 머리와 발이 닿는 공간!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넣어 나를 안는다. 엄마의 자궁 안이 이랬을까!
7:00 pm
굳이 여러 이유를 대며 그 커피집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한다. 저녁 밥값보다 비싼 커피와 빅토리아 조각 케이크를 시키는 사람은 내가 낳은 여자들이다. 배만 부르면 되지 무슨 케이크이냐고 목젖까지 기어 나온 말을 단숨에 삼킨다. 나는 따듯한 카푸치노를, 그녀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목을 길게 빼며 시침 떼듯 주문한다. 우와! 그런데 진심 맛있다! 투덜거림이 민망하다. 딸들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 젊은것들은 참 맛난 집도 잘도 안다. 하마터면 맛있는 것을 못 먹을 뻔했다. 나이 먹으면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어야 한다는 세간의 말이 맞다.세 여자는 호수가 보이는 찻 집에서 해님을 배웅했다.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어둠이 온다. 휴~~ 우! 이제야 하루를 꺼내 몇 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