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는 여름 장마가 늦게 시작되었다고 뉴스 끝마다 이야기한다. 장마가 늦게 시작되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걸까 문득 궁금하다. 밤새 하늘은 비와 바람을 뿌렸다. 좁게 열린 창틀 사이로 바람이 으르렁대는 통에 잠에서 깼다. 네 시 사십 분, 집안의 모든 창을 꼼꼼히 닫았다. 다시 고요해졌다. 이불속이 다시 잠을 부른다.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바삐 일을 하러 가신다고 한다. 아버지는 근사하게 차려입으시곤 울며 엄마에게 용서를 빈다. 큰 엄마와 작은 엄마도 보이고 장면이 바뀌어 경사면에 놓여있던 굵은 통나무가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간신히 피하다 눈을 떴다. 어스름 환해진 밖은 비를 머금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비는 잠시 조용하다.
왠지 뒤숭숭한 마음이 든다.
부고 문자가 왔다. 생과 사를 넘나들며 애썼던 목련꽃 같던 고운 사람이 떠나갔다. 이제야 흰 국화 한 송이 내미는 내 손길이 염치없어 슬프다. 좀 더 다정할 걸,
마음 열어 안아줄걸, 귀 기울여 들어줄 걸 그랬다.
화낼 줄 모른다고 타박만 하고, 주기만 한다고 바보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덤덤히 웃으며 듣기만 했다. 좀 더 약아서 뺀질거리기라도 하고 모른 체 했었더라면 그녀의 죽음이 조금이나마 억울하지 않았을 거다. 그곳도 좋은 사람이 필요한 건가! 이곳에서도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일찍도 데려가신다. 죽음에 무슨 토를 달까! 흰 블라우스를 입고 미소 짓는 젊은 영정사진이 낯설다. 하고 많은 사진 중에 하필 저 사진일까! 아들은 엄마가 고른 사진이었다고 했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촛불 같은 목숨에게 영정사진을 고르는 일은 너무나 큰 소모였을 거다. 그 시간에 아들 손 남편 손 한 번 더 토닥였을 그녀의 마지막이 애달프다. 덕분에 참으로 멋스러웠던 SNS의 그녀를 눈이 빠지도록 찾아보았다. 영정사진은 진실로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강제로 알아채게 했다. 아주 잠깐, 그동안 만났던 영정 속 떠나는 여러 사람의 사진들과 흰 국화들이 뒤엉켜 비틀거린다. 죽은 이에게 올리는 절을 한다.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늘 영정 앞에서는 기억들이 사라진다. 두 손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또 한 번 더 꿇었다. 먹먹함에 몸놀림이 둔하다. 절을 한 건지 앉았다 일어나 건지 혼란스럽다. 딸들과 같은 연배의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상주와의 눈 맞춤이 힘들다. 눈물이 난다. 그녀와의 갖가지 추억을 꺼내오니 더욱 그렁그렁하다. 발전된 현대의학은 아직 떠나기 이른 그녀를 왜 살리지 못했을까? 지금껏 배운 생명에 대한 윤리가 흔들린다. 헤집어 나눈 살 덩어리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냥 두는 것이 더 최선이 아니었을까? 내게 같은 상황이 왔었더라면 더 나은 선택을 했을까? 그럼 더 나은 선택은 무엇일까? 허탈한 마음은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진다.
모든 이가 단 한번 가는 곳, 좋은 곳이라 생각하련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 나도 갈 그곳에 멋있는 포토죤 맡아 놓고 맞아줄 지인이 생겼음으로 위로한다. 태어남과 죽음의 무게의 느낌은 천양지차지만 산 자에게는 살아감을 돌아보게 하는 죽음, 나쁘지만은 않다. 덤덤하게 사라짐을 받아들인다. 꽃이 된 그녀가 모든 것이 내려진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날기를 기도한다.
가는 길에 좋아하는 흰 목련 그득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