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아래 앞니가 말썽이다. 급기야 끙끙 앓을 정도의 통증이 생겨 급하게 소염진통제를 먹었다. 다음 날 치과에서 않던 이를 뽑았다. 염증이 있었던 터라 뽑고 나서도 여간 아픈 것이 아니다. 처방된 항생제와 진통제를 얼른 삼켰다. 트레이에 내 이빨 두 개가 보였다. 천덕꾸러기 쓰레기가 된 애쓴 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누가 들으면 웃기다고 할지 모르지만 '상실' 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치과의사 선생님도 혼잣말로 '에구, 애썼다' 하며 한마디 거드는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미타 쿠에 오야 신' 모두는 통해있다는 말이 맞다. 앞 아랫니 두 개를 빼고 걸쳐져 있던 허당 이까지 버리니 세 개의 공간이 새겼다. 일부러 히쭉 웃어 보이면 진짜 웃기다. 시쳇말로 웃프다. 말이 새어 나가고 밥풀이 빠진다. 떨어진 밥알을 주워 담으며 온갖 마음이 춤을 춘다. 이렇게 늙는 거구나! 발치 후 통증이 사라지니 세상 부러울것이 없다. 덩달아 부종도 빠졌다. 세 바늘 꿰맨 실이 까끌하니 자꾸 성가시다. 5일 째, 거울을 보고 몽땅 뽑아버렸다. 일주일치 처방된 약은 두 봉지만 소비했다.
젖니가 빠졌던 어릴 적엔 내 모습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남편과 애들에게 귀엽지 않냐고 히쭉하니 빈 잇몸을 보여주지만 그 누구도 귀엽다고 하지 않는다. 외려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공감 제로인 그가 나의 상실에 공감을 한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잃어지고, 비워지고, 나중엔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이 자연인데, 청승 떨지 말라고 남편에게 핀잔을 준다. 이만큼 썼으니 되었다. 그래도 임플란트심을 수 있는 지금 시대에 사는 게 어디냐! 임플란트 스케줄을 잡았다. 인공이가 생기기 전까지 날마다 가족들을 웃겨줄 테다!
글을 가르쳐 주던 스승과 글공부를 마쳤다. 배움은 끝이 없지만 여기까지가 1막이라고 해 두겠다. 이년이 넘도록 쉼과 도전이 반복되었고 가르침 덕분에 아주 조금씩 변하는 나를 만났다. 1막의 커튼이 닫히자 스스로의 한계를 알게 되었다. 마구 앞만 보고 달렸던 지금까지의 여정에 쉼표를 찍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되돌아보고 천천히 가기도 하고 잠시 앉아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좋다. 그때의 나랑 지금의 나랑은 다르기 때문에 되돌아오는 것 또한 나쁘지 않겠다. 자서전 쓸 정도의 갑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금을 울리는 잘 나가는 작가도 아닌 나는 들러리 글로 책을 내기도 부끄럽다.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은 결국 상위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어떠리! 지금껏 그들이 준 용기를 발판으로 나만이 갖고 있는 흔치 않은 이야기를 혼자, 천천히 쓰자.
출산예정일을 2주 남긴 수지는 간호사이다. 간호학생 시절, 조산원 실습 중 보게 된'자연스러운 출산'은 미래의 작은 씨앗이 되어 자랐다. '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면 선생님께로 아기 낳으러 올게요' 농담 반 진담 반, 학생들은 재잘대며 깜깜한 거리로 떠나갔다. 4년 정도 지났을까? 아기를 가졌다고 연락이 왔다. 모든 것이 건강하다면 의구심 없이 누구와 출산을 할 건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했다. 임신 중반기, 편안한 부부를 처음 만났다. 남편은 간호사인 아내의 의견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다. 내 마음도 편안했던지 얼떨결에 튀어나오는 의학용어에 남편은 다소 당황하는 듯 보였다. 임신 30주부터 시작한 단톡방으로, 날마다 보내오는 식단과 운동은 수지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가늠케 했다. 하루 2000보를 걸었던 발걸음 수는 점차 늘어 하루 7000보 이상을 기록했다. 드물게 10000보를 찍는 날엔 온갖 축하 이모티콘을 날려주기도 했다. 식단 조절도 놀라웠다. 가끔은 정말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남편은 밤마다 아기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중간중간 출산교육을 차근히 받았고 예정일 3주 전에는 출산 예행연습도 마쳤다. 돌아가는 길에 만삭의 그녀에게 힘들지만 조금만 잘 견디자고 위로를 했다. '잘 태어나겠죠! 저는 별 생각이 안 들어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을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반달이 떴다. 점점 달이 동그래지면 수지의 아기마지가 시작될 거다. 제 때에 맞추어 자연의 순리대로....
네 발로 땅에 엎드려 일주일 동안 무섭게 자란 잡초를 뽑는다. 어떤 것은 아침이슬에 젖어 잘 뽑히는 것이 있는 반면 명아주나 망초대 같은 키 커진 풀은 영낙없이 엉덩방아 감이다. 분명 지난번에 모두 뽑은 것 같은데 내 눈을 피한 요 녀석들이 대단하다. 크게 자란 풀들을 뽑으면 등짝에 담도 들고 손가락 관절도 아프다. 후끈한 바람이 지나간다. 흘린 땀방울에 그것조차 잠깐 시원하다. 옆집 오이 하우스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그거 못 이겨요. 그냥 제초제 뿌려야지~' 돈도 되지 않는 손바닥만 한 땅에 흙투성이가 되어 낑낑거리는 내게 고수농부는 조언을 준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 또 겨울이 오면 사그라질 몸으로 땅으로 돌아가는 풀에게 작은 예를 지키고 싶다. 다시 네발로 기어 다니며 일주일이 채 안되어 정글 이 될, 표시 나지 않을 풀을 뽑는다. 아기를 낳으며 바닥에 머리를 대고 기도하는 듯 엎드린 산모들의 모양새와 나의 모양새는 묘하게 같다. 겸손히 엎드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농사나 아기 낳는 일이나 같다고 한 미셀 오당 박사의 말이 떠오른다. 조금만 더 견뎌봐야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 보는 동안 가을이 올 것이다. 연이어 겨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