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랑 사는 외국인 아내들, 명절에는 더 바쁘다.
자기의 나라 전통음식도 먹고 싶을 테고 한국음식도 알아가야 하니까. 타냐도 그렇다.
스파게티 12인분을 만들어 놓았다며 진통이 걸린 타냐가 으쓱이며 말한다. 배고프면 언제든지 먹으란다. 만삭에 음식을 준비한 타냐의 목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단호하고 힘차다. 추석 장을 보다가 혼비백산으로 달려온 나는 사실 입안이 쓰다. 진통을 지켜보는 과정에 먹기 좋은 음식은 역시 물이다. 다른 음식들은 아기를 잘 받고 나서야 목구멍이 넘기기를 허용한다. 아기를 받은 후 밀려오는 시장기는 엄청나다. 요 이쁜 녀석을 잘 받아내고 타냐가 만들어 놓은 스파게티를 먹어야겠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을 바라는 가족들은 결국 티나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첫아기를 유럽 고향집에서 낳은 경험이 있는 타나는 이미 가정출산이 얼마나 편안한지 알고 있다. 애써 가족들은 가정출산을 허락 했지만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껄끄러운 에너지는 감춰지지 않는다. 정작 아기 낳는 이보다 더 어깨가 올라가 있는 가족들, 그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오늘 출산에서 내가 할 첫 번째 일이다. 내일이 명절이니 타나네 부엌도 부산한 건 당연하다. 만사를 제치고 달려온 나처럼 그들도 만사를 제쳐야 한다. 부엌에 서 있던 두 여인에게 얼른 정리를 하고 타냐의 '고요'를 위해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사방에 켜진 밝은 전구도 모조리 껐다. 어둠이 강제로 고요를 꺼내온다.
어둠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시동생은 배가 아프다며 타냐가 쓰고 있는 화장실 앞에 서 있다. 갑자기 안보이던 개도 튀어나와 나를 보더니 왈왈 댄다. 강제소등을 당한 가족들이 속닥이는 소리에 타냐는 진통에 집중할 수 없다. 아기 낳는 사람에게 왜 고요가, 어둠이 중요한 지 작은 소리로 식구들에게 설명했다. 참 신기하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속닥거림은 계속되는 것은 진실로 출산 환경에 대한 이해를 못한 증표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친해진 듯했던 개가 또다시 왈왈 댄다. 결국 타냐는 피곤하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진통이 강하지 않으니 한 시간만 쉬어보자고 했다. 나도 잠시 밖으로 나왔다. 휘영청 달이 밝지만 바람은 태풍을 몰고 오는 것처럼 나뭇가지를 흔든다. 명절을 쇠러 간 사람이 많은지 마을은 고요하다. 열 시인데도 한밤중 같다. 운전을 해준 남편과 편의점 의자에 앉아 커피와 컵라면을 샀다. 컵라면은 가정 출산을 도와 운전을 해주는 남편의 최애 음식이다. 추석 이브의 달빛은 이 생경한 상황도 모른 채 길을 훤히 비춘다.
타냐의 자궁문이 빨리 열리라고 소원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