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행랑

살아가기

by 김옥진

추석 즈음에 예정일인 아기가 조금 일찍 태어났으면 하고 바랬다. 작년 추석도 아기가 태어나는 통에 송편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있어야 할 장소에 머물 수 없는 직업, 언제나 줄행랑을 쳐야 했던 나는 여전히 다름없이 그 선에 머문다. 올해 추석 연휴도 나의 바람은 무색해졌다. 사실 이럴 거란 예상으로 그동안 미리 음식들을 준비했다. 만들어 놓은 음식을 일주일 전부터 야금야금 먹었다. 하루에 한 두 가지씩 추석 별식을 먹는 바람에 홀쭉해 보였던 얼굴이 원치 않게 보름달을 닮아간다.

음식들이 바닥이 보일 때쯤 추석이 내일로 다가왔다. 두세 가지 추석찬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바쁠 것은 없지만 빨리 장을 보고 제 자리로 돌아와 출산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음식도, 어떤 명절도 출산 시작 소식에 차순위로 밀려난다. 가끔 출산을 우선순위에 두는 짜릿함도 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만나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출산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줄행랑을 칠 수 있는 면죄부를 준다. 심호흡을 하고 줄행랑을 친적이 얼마나 많았나! 조금 한가해진 요즘, 줄행랑치며 한 곳으로 달려갔던 수많은 짜릿한 순간들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장을 보는데 문자가 왔다.

아! 올해도 추석 줄행랑을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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