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진통이 오는 타냐 덕분에 추석 연휴는 자동으로 반납되었고 그 후로도 나의 대기는 계속되었다. 예정일에서 열흘이 지나는 날 아침, 좀 더 강한 자궁수축이 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동안 있었던 간헐적 진통으로 태아의 상태도 슬슬 걱정이 되던 차이다. 혹여 다른 문제로 태변을 보았으면 어쩌나, 양수가 줄어들었으면 어쩌나, 아기가 예상외로 자라서 낳기가 힘들면 어쩌나, 갖가지 걱정들은 날이 지나갈수록 짬짬이 나를 괴롭혔다. 아기를 낳는 이 가 아기를 받아내는 사람에게 탓을 돌리기 쉬운 세상에서 이럴 경우가 생길 때마다 내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문득 타냐의 환한 미소와 흥얼거리던 노랫소리, 그것에 맞추어 피아노를 멋들어지게 치던 타냐의 남편을 떠올렸다. 노래를 좋아하고 나름의 믿는 신이 있으며 티끗의 두려움도 없는 타냐를 떠올리면 두근거리던 내 심장은 진정이 되곤 했었다. 간간히 나도 별수 없는 속물이구나, 그 많은 경력은 각기 다른 개개인에겐 유효하지 않음이 증명된 것에 다시 겸허한 마음을 꺼내게 했다.
어쨌든, 출산예정일은 열흘이 지나갔고 교과서대로 기다릴 수 있는 남은 시간은 나흘뿐이다. 그런데 진통이 온단다. 스스로도 아직은 세지 않은 진통이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그녀를 만나서 작은 개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천둥과 벼락이 치며 바람이 소리를 낸다. 날씨가 화가 나면 태아들도 무서워 웅크리는지 날이 말개질 때까지 태어나지 않는다. 영험하다. 하늘이 말갛게 될 때까지 나도 기다려야 한다. 마음으로 빈다. 얼른 화창해져라! 더 투명해져라!
천지가 태어날 아기를 위해 구름과 비를 거두고 흰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불러왔다. 슬슬 떠나볼까!
바닥은 채 마르지 않았지만 씻겨진 공기가 상쾌하다.
커튼이 예쁜 바람과 춤을 춘다. 기다릴 만큼 기다린 타냐는 시작된 진통을 반가워했다. 드디어 아기는 무료한 뱃속 생활을 청산할 때가 온 거다.
진통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양막에 구멍을 냈다. 걱정했던 양수의 색은 샘물처럼 맑게 흘러나왔다.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통이 좀 더 강해지도록 하기 위해 나가서 한 시간 동안 걷고 오라고 했다. 유치원 아이들처럼 부부는 손을 잡고 총총 걸어 나갔다.
해가 바다 위로 사라지고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밤은 고요도 함께 데리고 왔다. 양수는 진통이 올 때마다 조금씩 흐른다. 물컹하고 양수가 많이 나올 때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본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인도 사람들처럼 no problem!이라고 속삭인다. 타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배가 고프다고 한다. 진통 중 먹을 불고기를 밥 위에 한가득 얹고 씩씩하게 잘도 먹는다. 금세 뚝딱 한 그릇을 비우더니 더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암! 먹어도 되고말고! 잘 먹는 산모는 아기도 잘 낳는다며 추켜세웠다. 두 그릇의 불고기 덮밥을 먹고는 샤워를 하겠다고 한다. 창피함도 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방귀도 뀌어가며 변도 본다. 내 맘도 참 편안하다. 장이 비워지면 진통을 유발하는 프로스타글란딘 호르몬이 아기의 탄생을 돕는다. 모두 자연스러운 일, 아기 낳는 일은 누군가 어떤 것을 해야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수중 출산을 위해 물을 받는다. 물의 온도며 양을 적절히 하는 것 또한 내 몫이다. 눈에 띄지 않고 소리 내지 않으며 첩보작전을 하듯 오간다. 이제부터는 수중 진통을 한다. 사오분 간격으로 제법 강해진 진통은 따듯한 물로 인해 진정된다. 엎드렸다가 기대었다가, 자유로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아기마지가 코앞인 거다. 얼굴이 따듯한 물로 인해 벌겋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어 시원한 물을 먹였다. 찬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시원하게 해 준다. 타냐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환호를 한다. 밤 열두 시가 지나고 새벽을 바라본다. 갑자기 목소리가 달라졌다.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나고 쉼 없이 진통이 온다. 얼굴을 보니 이제 몇 번의 진통이 오가면 아기를 만날 수 있겠다.
타냐가 이번 출산에서 바라는 것 중 하나는 회음 열상을 입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따듯한 물이 그것을 도울 것이고 아기 머리가 만출 될 때 호흡조절을 잘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물론 회음 열상을 방지하기 위해 회음을 지지해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손끝에서 아두가 만져진다. 호흡을 짧게 짧게 끊어서 뱉어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내 호흡 소리를 따라 하게 하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아두가 나왔다. 몸도 역시 짧은 호흡으로 나와야 한다. 아두가 나오는 시간에 비해 몸통이 나오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물속에 아기가 둥둥 떠있다. 타냐에게 스스로 아기를 건져 올리라고 말했다. 타냐가 아기를 물속에서 꺼내 안았다. 아기가 두 눈을 뜨고 엄마를 본다. 켁켁 물도 뱉어낸다. 울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조용하다. 나만 침착하고 모두들 흥분 도가니다.
타냐는 회음 열상을 입지 않았다.
오예!!!!! 타샤가 환호성을 지른다.
침대로 옮겨와 젖을 물렸다. 힘차다. 두 생명 모두 건강하다.
2주간의 기다림은 건강한 수중 출산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