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이 뜸해진 여인은 방으로 남편과 함께 들어가고 나 혼자 깜깜한 거실에 덩그러니 앉았다. 짖어대던 맘에 안 드는 이 집의 개도 자는지 조용하다. 깡좋게 시집도 안 간 산모의 시누는 출산 현장을 보겠다고 나가지 않고 방을 고수하고 있다. 시엄마는 진통하는 며느리 편하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법석이던 집이 적막강산이지만 밖은 비바람이 치며 번개와 천둥이 숨바꼭질을 한다. 이런 을씨년스러운 날엔 아기들이 태어나지 않는데... 끙!!! 소파에 허리를 대고 누웠다. 밤 열두 시가 넘어간다.
"띵동"
채 오분이 지났을까? 뜬금없는 초인종이 울린다.
"띵동"
벌떡 일어나 앉았다. 또다시 울린다. 아니 이 집 식구들은 귀가 먹었나? 아무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띵동"
그 짧은 사이에 또다시 울리는 초인종. 내가 나가봐야 하나?
"띵동"
또, 또, 울린다.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깜깜한 거실에서 현관까지는 다섯 걸음이다. 잰걸음으로 뛰어서 현관문을 열었다. 작은 나보다 더 작은 할머니가 서 계셨다. 혹 아기를 낳는다고 다른 친척이라도 온건가?
"누구세요? "
당연한 나의 질문이다. 이미 이 집의 시어머니와 그 밖의 식구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는 댁은 뉘슈? "
추레한 할머니의 모습과 천둥벼락에 폭풍처럼 쏟아지는 빗소리,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할머니가 슬슬 무서워진다.
잠깐! 이 이상한 단답식 대화는 무얼까?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내가 물었다.
"누구세요?"
무서운 할머니 왈
"아!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냐니까?"
언성까지 올라갔다.
나도 질세라
"아! 네! 왜 그러시는 거냐고요?"
그제야 무서운 할머니는
"나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 아니! 이 집 사람들 어디 갔어요? 옥상에..@@@@@. 비바람@@@@@ 부는데... 뭔 잡동사니를 늘어놓고선@@@@...
"그런데! 참, 댁은 뉘슈?"
또다시 뉘슈? 가 날아온다.
문득 할머니의 속사포 같은 컴플레인을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 저는 아기를 받으러 온 산파예요. 지금 이 집 며느리가 아기를 낳으려 해서 제가 온 거고요. 산모는 지금 진통을 하고 있어요. 무슨 일인지는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오늘 밤 좀 시끄럽더라도 양해 좀 해 주세요. 아마 이 집 식구들은 모두 잠이 든 거 같아요. 주신 말씀은 제가 잘 전달해 드릴게요~ 죄송해요~ "
기어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자초지종을 말하자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까지 갸우뚱하시며
"아기를 낳는다고? "
아기를 낳는다는 소리에 도끼 같은 눈빛은 금방 사그라들더니 말씀을 꼭 전해주라는 센 소리를 뒤로하며 층계를 내려가셨다. 아기를 낳아본 할머니의 추억이 열네 개의 계단을 내려가며 떠올려지지 않았을까! 그래서였을까 다행히도 밤이 새도록 할머니의 컴플레인은 반복되지 않았다.
작은 북새통에도 안방의 산모는 진통이 사라졌는지 숨이 고르다. 그 날 밤 나는 산파가 아닌 집 지키는 집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