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출산 노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자연출산 이야기

by 김옥진

경이의 양막이 열린 지 23시간째, 문득문득 걱정이 들라치면 심장이 널을 뛴다. 까짓, 안되면 병원으로 보내면 될 것이라며 마음을 접지만 자연출산을 하겠다던 그녀의 외침이 궛전을 울린 다. 그 마음 잘 안다! 알아!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자연출산만을 외치며 무작정 진통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기를 부리는 것은 후환을 자초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아기가 태어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 내 임무 중 하나다. 아기가 잘못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 일뿐더러 용납되지 않는 세상이라 서다. 생명은 가끔 쉽게 스러지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화두 앞에선 변함없이 후들거린다. 죽음에 대해 침묵하기만을 배운 우리 모두는 그래서 더 힘들다. 아이를 낳는 장소에서의 죽음은 타인이 원인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본다. 그 원인은 아이 낳는 사람이 제일 잘 안다. 상상이 공포로 다가온다. 경이의 진통이 잦아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양막 파수 24시간째, 진통은 더 세게 오고 있다. 어미가 조급함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출산 문이 저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산고는 있으나 아이를 내어 놓은 일 맨 앞 선두 주자는 결국 받아들이겠다는 어미의 '긍정'이다. 두려움이 기대로 바뀌었다. 조금 있으면 불같은 사랑 덩어리가 우리에게 안길 거다.

하나 가득 그녀의 메모장은 빼곡하다.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로 가득 찬 불안 노트다. 놓처지면 안 되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식이다. 노트 한 권의 메모는 정작 출산이 시작되면 훼방꾼이 된다. 일일이 기억을 꺼내고 실행에 옮기려 뇌는 풀가동되어, 아이 내어 놓는 일엔 소원해지게 된다. 노트 따위에 연연하지 않은 산모는 출산이 쉽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간 듯 보이는 출산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출산 준비를 위한 그녀의 노트는 아기를 내어놓는 일엔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상과 비정상 경계 위에서 경이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가 한 걱정은 모두 개털이 되었다. 야홋!

조산사들이여 ~


노트 한 권 가득한 출산준비 노트를 가진 여성을 경계하라. 특별히 더 정신 차리고 지켜보아야 한다.
허투루 준비된 산모의 출산은 황홀할 것이다.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준비만 하면 된다.


두렵지 않은 이에겐 두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다.


많은 질문을 하는 이 또한 경계하라.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말이 많아진다.


상처를 보듬어 풀어가도록 도와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눈 맞춤도 많이 필요하다. 내 뱉지 못한 상처가 출산 길을 막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미의 상처는 아기에게 대물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