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3년 전, 미라의 두 아이 모두를 받았다. 힘들었던 첫아들 출산, 그에 비해 아주 순조로왔던 둘째 딸, 아이들에게 지극한 어미는 셋째를 품고서 진찰 한 번 오지 못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없고 데리고 오는 것도 번거로와서다. 그래도 괜찮았다. 병원 진찰 결과만 알면 되겠다 싶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예정일을 3주 앞두고 산부인과 진찰을 하니 빈혈이 심하다며 당장 대학병원에 가서 수혈해야 한다고 했단다. 두 아이를 잘 낳았던 경험으로 맘 편히 지내다가 혼비백산이다. 다행히도 수혈까지는 아니었지만 빈혈 주사를 맞고 흡수 잘되는 철분제를 먹으니 수치가 7.3에서 8.9로 올랐다.보통은 10 이상의 수치로 유지되어야 정상인데 아직 부족하다. 묽어진 어미의 혈액은 아기에게 이롭게 작용해서 대신 아기는 건강할 것이다. 서양 여자들도 가끔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은데 아기는 오히려 건강했던 경험이 있다.
빈혈 있는 산모가 출산 시 출혈을 하게 되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아무리 두 아이를 잘 낳았다 하더라도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대학 병원으로 출산 장소를 급하게 변경했다. 가끔 편의를 봐주셨던 교수님의 허락도 받았고 다시 진찰도 했다. 정리가 되니 모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른 아기들이랑 겹치기 출산만 없기를 바랐다.
임신 38주를 막 넘긴 셋째 아기를 가진 미라에게서 진통 같은 수축이 온다고 문자가 왔다. 오후 세시 삼십 분이다. 조금 있으면 퇴근 시간이니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규칙적으로 되거나 7분 간격이 되면 다시 알려 달라 이르고 채비를 차렸다. 한 시간 후인 오후 4:30분, 7분 간격의 진통으로 바뀌어져 병원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나도 따라 길을 나섰다. 미라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진찰을 했는데 벌써 80%나 진행이 되었다고 알려왔다. 양막이 열리면 진행이 빨라질 것이 걱정되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지만 지금 상황에서 조급함은 오히려 화가 된다. 사고나 실수는 있어서는 안 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민첩하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운전대도 다시 꽉 부여잡고 두 눈도 부릅떠진다. 미라가 도착한 지 십 분 후 나도 병원에 도착했다. 진행이 많이 된 미라의 출산이 진행될까 봐 인적사항을 적고 열을 재는 시간에도 조바심이 났다.
코로나로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가게 하는 대학병원, 미라의 남편은 그동안에 차 안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나만 가족분만실로 들어갔다. 분만실의 조산사 스테프들은 파업한 레지던트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그 날 따라 분주하다. 교수들이 산모들을 보는 바쁜 분만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모두가 딱하긴 하지만 미라가 진통하는 동안 많이 들락거릴 사람이 없어 우리는 더 조용히 아기를 맞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강한 진통이 연이어 서너 번 이어지자 아기가 태어났다.
어미가 임신 중 힘들었었는지 태어난 녀석은 다른 아기들에 비해 꽤나 운다. 소리를 듣고 근무 중인 조산사가 뛰어 왔을 때엔 이미 아기는 엄마의 가슴에 안겨 있었다. 다행히도 출혈은 없다. 빈혈 수치 걱정은 일단락되었다. 태반은 깨끗이 나왔고 예상대로 회음 손상도 없다. 참 할 일이 없다. 그저 함께 축하해주고 위로해 주며 행복을 나누기만 하면 되었다. 근무 중이던 스텝 조산사는 심플하게 정리된 산실을 나가면서 내게 엄지 척을 했다.
깔끔한 여자를 아내로 둔 남자는 세상 모든 여자가 이렇게 아기를 낳는다고 생각할 거다. 밖에서 두 아이들과 볶닥거릴 남편에게 얼른 방금 태어난 아기 사진 두 장을 보냈다. 10초도 안 되어 감사하다는 답글이 온 걸 보면 그 남자의 애간장은 닳고 달아 있었음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고 난 후, 남편과 교대를 했다. 차에서 내려 나의 손을 덥석 잡은 그의 입은 함박꽃이다. 연신 감사하다며 서둘러 산모에게로 뛰어가는 그를 뒤로 하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조금 있으면 코로나로 밥집들이 8시에 문을 닫는다. 종종걸음으로 눈여겨보아 두었던 국밥집으로 갔다. 나름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사라지니 세상 더없이 꿀맛이다. 아기 받고 먹는 음식은 국밥이 최고다. 배가 부르니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은 할 가치가 있었다. 병원에서 출산을 하자고 조언하고 실행에 옮겼던 나의 내면에도, 단호하게 수혈을 하러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한 의사의 내면에도 똑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어제쯤 출산을 기쁘게 도와줄 수 있게 될까?미라는 또다시 육아를 시작한다. 자식 끔찍이 여기는 엄마의 사랑 보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좀 더 평화로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