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4만 원짜리 모텔 숙박을 했다.

살아가기

by 김옥진

밤길을 달려 아기를 받으러 간다. 일찍 저녁을 먹은 덕분에 출출하다.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려 마음먹었다. 새벽이라서인지 고속도로도 썰렁하지만 휴게소조차 불만 훤히 켜 있지 사람이 거의 없다. 축구장 같은 주차장엔 우리 차까지 달랑 두대뿐. 감히 음식을 주문하면 미안할 것 같아 그냥 편의점 라면을 선택했다. 최애 야간근무 간식은 역시 간편한 컵라면이 최고다, 그런데 편의점 계산대에 사람이 없다. 라면 고르고 있으면 나오겠지 싶어 두리번거리며 컵라면을 찾았다. 없다! 라면이... 찰나, 눈 비비고 한참만에 나오는 점원은 어디서 눈을 부치고 있었는지 게슴츠레하다. 민망해도 컵라면 있냐고 물었다. 없단다. 음, 편의점에 컵라면이 없구나! 뒤통수가 왜 뜨거워지는지 알아채릴 사이도 없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휴게소를 나왔다. 먹을 것을 기대했던 정직한 내 몸은 소화액을 분비하고 컵라면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는지 꼬르륵 소리를 냈다. 날도 춥고 뜨끈한 국물을 상상하니 불쑥불쑥 침샘이 열일을 한다. 목적지 마을엔 24시 감자탕 식당이 있을 거다라는 주문을 외웠다. 깜깜한 마을로 들어섰지만 밤 세시에 불 켜진 감자탕집은 곳은 없었다. 내 주문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음이다.


"24시간"이란 글씨가 보인다. 감자탕이 아니라 김밥집이다. 가게가 열려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 혹여 잠든 주인을 깨울까 싶어 살그머니 문을 열며 '식사되나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마침 식당 안에는 마지막 중년을 보내고 있는 여자와 나이 든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맞는다. 잠깐의 사이에 내 미소와 그녀의 미소가 만났다. 난 순두부찌개를, 함께 간 이는 라면에 김밥을 시켰다. 그냥 일반 김밥을 시켜도 되겠지만 500원이라도 비싼 참치김밥을 주문했다. 굳이 라면을 먹겠다는 함께 간 이의 마음이 잠시 미웠다. 어쨌든, 이제 힘내서 아기를 받으러 가면 된다. 지금껏 진통이 강해졌다는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문자를 확인하니 진통이 점점 약해졌고 지금은 거의 진통이 없어졌다고 했다. 야식도 먹고 먼길을 달려왔는데 헛걸음인가! 다시 진통이 올 것을 기대하며 산모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다행히도 그 마을 근처엔 모텔이 수두룩하다.


약 십 년 전이었을까? 어느 산골짜기로 아기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진통이 오다 말다를 반복하는 통에 동네 경로당을 숙소 삼아 눈을 붙인 기억이 있다. 이른 아침, 경로당에 첫 출근을 하신 할머니가 낯선 남녀가 잠을 자고 있는 우리에게 보냈던 그 야릇한 눈초리는 지금도 웃음을 자아낸다. 산골짜기 그 산모는 그로부터 24시간을 더 진통을 한 후 아기를 만났다.


이곳은 그래도 모텔도 있고 그 산골짜기에 비하면 땡큐다. 새벽 세시반, 모텔에는 주인도 없고 키오스크 화면에는 객실이 만실이라고 쓰여있었다. 이상도 하여라. 이 동네는 어떤 동네길래 평일 모텔이 만실인지! 다시 검색을 했다. 5킬로 떨어진 곳에 별 네 개 반을 받은 숙소가 있다. 이래저래 낯선 도로에서 시간이 간다. 모텔주인은 프런트 바닥에서 자다 깨어 인심 쓰듯 4만 오천 원인데 4만 원만 받겠단다. 4층, 금연 방, 옷 입은 채로 사각거리는 빳빳한 흰 시트 안으로 들어갔다.


날이 밝았다. 하룻밤사이 진찰 결과는 "아직!"이다.

결국 셋째 아기라서 후다닥 태어날 것이라 여긴 내 불찰이다. 여행 온 셈 치자라고 생각하지만 여행 준비가 아닌 출산 준비물만 가지고 왔으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예상과 동떨어지고 가끔은 뜬금없는 출산, 얕보지 말고 겸손해야 함이다.


결국 돌아와 하룻밤과 하루 낮을 더 보낸 셋째 날 밤, 똑같은 길을 달려 24시 김밥집을 지나 밤 12시가 다 된 자시에 셋째는 태어났다.


며칠 후 산모는 첫애와 둘째를 낳을 때보다 남편과 더 애틋한 동지애가 생겼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보기좋다.

넷째를 낳을 예정이 있냐고 묻는 내게 손사래를 치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는 또 한 번의 인연으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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