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9개월 된 아버지 면회를 했다. 요양보호사가 이불을 젖히자 삭정이가 된 아버지의 다리가 보인다. 동시에 내 눈동자는 얼른 도망을 갔다. 단식을 하며 느꼈던 명료함처럼 기름기 사라진 아버지의 뇌는 오히려 발음도, 표정도, 쓰러져 사경을 헤맸던 시절보다 단단하다. 세상을 딛고 일어설 근육만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무덤 속 백골로 변했다. 말하는 백골, 유리창 안의 아버지와 햇살에 얼비친 나뭇가지가 봄이 범접을 막아선다. 봄이 올까? 짧은 순간에 슬픔은 내 몸을 에워쌌다. 함께 간 가족들이 돌아가며 새해 인사를 한다. 알아보기도 하고 엉뚱한 이름을 대기도 한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기억 속의 모르는 이름을 불러대도 우리는 돌쟁이 아이의 한 발 떼기 걸음을 손뼉 치며 환호하는 부모처럼 목청을 높이고 박수를 쳐댔다. 그저 숨을 쉬고 눈을 맞추고 우물우물 뭔가를 말하는 것이면 되었다고들 생각한다. 이치에 맞지 않아도, 다른 이의 이름을 말해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최선은 아버지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고 큰 몸짓으로 하트를 날린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유리창이 가로막혀 만지지도, 안아주지도, 쓰다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은 최고의 코미디다. 간간히 침묵이 흐르며 아버지의 눈 주위가 빨갛게 될라치면 불 난데 기름을 붓듯 우리는 또다시 목청을 높이고 손을 흔들며 입꼬리를 끝까지 올리며 아우성쳤다. 눈물을 마음껏 흘려도 좋으련만, 붉어진 눈은 순식간에 전염되었지만 모두들 침 몇 번 꿀떡거리며 눈물을 제 자리에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