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이 시작되었다 해서 급히 출발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다. 선생님 아기가 태어났네요.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기다!!! 한껏 흥이난 네 살배기 아이의 목소리도 전화기 너머로 들린다. 다행스럽게도 갓 태어난 아기의 소리도 들리니 걱정이 없다. 네, 아직 40킬로가 남았어요. 아기의 울음소리가 건강하니 엄마의 가슴에 올려주시고 속싸개로 좀 덮어주세요. 태반은 굳이 당기지 않으셔도 되니 제가 도착할 때까지 만출증상이 없다면 그냥 두세요. 혹시 또 태반이 일찍 나올지도 모르니 태반을 받아낼 조금 큰 그릇을 가져다 놓으세요. 산모가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한다면 태반이 나오는 증상이니 잘 살피시고 제게 전화를 하시길 바래요. 최대한 빨리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빨리 태어나다니, 경험치에서 멀리 있는 일이다. 아주 드물게 급한 아기들은 아무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나곤 한다. 무용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대부분 두 생명은 건강했다. 단 한 명의 아기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대 의료를 배운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다. 평균 걸리는 시간보다 빨리 태어난다는 것은 자궁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했음을 의미하며 자칫 그 이유로 자궁 허탈증에 빠져 태반이 만출된 후 출혈을 할 수도 있다. 다른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것도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인가 보다. 내심 내가 도착할 때까지 태반이 나오지 않기를 빌었다.
처음 상담전화를 하면서 아내는 남편이 혼자서 아기를 받겠다고 많이 고집을 핀다 말했다. 출산 예정일이 많이 남았을 때에는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깊은 속내는 역시나 산모의 불안이었다. 출산예정일이 이틀 지나자 결국 내게 출산 도움을 요청했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사이라서 어제는 동영상으로 통화를 하며 마지막 출산준비를 마쳤다. 예감이라는 것은 참 신비롭기도 하고 과학으로 설명 불가한 것이 오늘따라 왠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가까운 시장조차 나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출산 준비를 다시 확인하고 출발선에 선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내달릴 준비를 마쳤다.
나도 준비를 마쳤고 산모 또한 그랬다. 언제 아기가 소식을 주려나! 자꾸만 신경이 쓰여 나도 모르게 거실을 내내 빙빙 돌고 있었다.
어제 나눈 남편과의 선하고 따듯한 느낌의 대화는 내 맘도 무장해제시켰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순조로울 거라 느껴졌다.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산모의 아기를 받는다는 것은 큰 모험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될 것 같다는 힘이 솟아났다. 아버지가 자식을 받아내겠다고 결심한 일은 진심인 그의 성정으로부터 왔을 것이다. 그 힘도 내게 전달되었다.
조산사의 도움을 받으며 아기를 낳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자 아내는 급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마음이 풀어지니 몸이 저절로 풀어졌어요. 짧은 진통으로 아기를 만난 것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아기 받아주시겠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방금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그녀는 많이 행복해했다. 3.9킬로, 회음 손상 없이 아기를 만났다.
내가 도착해서 이 십 여분 후에 태반은 깨끗이 떨어졌다. 출혈, 없다. 자궁수축도 잘 된다. 남은 마지막 걱정이 사라졌다. 발도장을 찍고 체중, 머리둘레를 쟀다. 아기의 몸을 사정하고 마지막 고환 두 개를 확인했다. 근육의 탄력도 좋고 피부 색깔도 핑크빛이다. 엄마 젖을 떼니 집이 떠나가도록 운다. 스스로 생명줄을 붙잡고 제 길로 잘 태어났다.
셋째를 낳을 때쯤엔 남편이 산파 노릇을 해도 될 만한 정직한 몸을 지닌 아내였다. 더불어 남편에게 태반 나오는 감각과 자궁수축을 체크하는 법도 알려주었는데 난장판이 되지 않도록 젠틀하게 태반과 피를 받아내는 방법은 보너스였다. 귀 기울여 집중하는 남편의 얼굴에는 셋째를 받아 낼 각오가 서려있다.
다음 셋째 출산 때에는 제가 필요 없겠어요. 가족끼리 낳아도 문제없어 보입니다. 남편분은 참 장가를 잘 가셨습니다. 만족스레 웃는 남편을 쳐다보는 산모는 무언의 승낙을 하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