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첫아기를 낳았다. 새벽 근무 중에 양수가 열렸지만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꼬물대니 진통이 더 세어지기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기 잘 낳으라고 삼겹살을 거하게 구어주신 어머니의 기도와 철없는 초보 엄마의 의연함은 콜라보되어 밤중의 아기마지를 기대하게 했다. 저녁이 되자 제법 강한 자궁수축이 왔다. 아팠지만 신기했다. 아직 덜 아프니 그랬었다. 다른 여자들의 아기만 받았는데 내가 아이를 낳는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는 내가 환자가 되어 입원을 한다. 의연하게 엄마에게는 주무시라고 했다. 잘 낳고 오겠다며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그 엄마의 그 딸! 엄마도 잘 낳고 오라고 손을 흔드셨다.어련히 잘 낳고 올라고! 내 딸인데...
환자복을 갈아입으니 영락없는 아픈 사람이다.
나와 입사동기가 이브닝 근무 중이다. 나의 일터였어서 어설픔은 없고 다른 동료들이 신기해하며 들여다본다. 입원의 과정은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아기 나오는 곳의 제모도, 300cc 비눗물 관장도, 침대 하나 차지하고 누워서 진통하는 것도 같다. 제모는 뭐 그럭저럭 했다. 나름 VIP랍시고 새 면도날을 쓰다가 소중한 곳을 베이는 불상사가 염려되어 새것 쓰지 말아 달라고 오지랖을 떨었다. 비눗물 관장을 하고는 10분간 참느라 죽을 뻔했다. 관장약이 들어온 나의 장은 난리를 부리며 자궁수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변을 보는 참사를 막으려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는데 문고리가 떨어져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내심 아기 낳으러 온 산모들에게 하는 말이 떠올랐다."십분 참았다 가셔야지 안 그러면 아기 낳을 때 변이 나와요!"
그 후 올 진통은 수십 배 더 할 것이라는 상상은 미처 못했다. 상. 상. 초. 월!!!. 침대에 누워 진통이 올 때마다 남편의 손만 부서 저라 잡고 견뎠다. 남들 다 하는 것이니 나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사동기는 바쁜지 아예 와 보지도 않는다. 그래! 난 한다! 아기가 작아 빠르게 진행이 됐는지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왔다. 다들 혼비 백산이다. 휠체어를 제치고 맨발로 분만실에 뛰어 들어가서 분만대에 올라가 누웠다. 사실 휠체어를 타나, 걸으나 진통은 매 한 가지란 생각도 들었다. 들고 있던 손수건을 입에 물었다. 다섯 번 진통을 하자 과장님이 뛰어들어 오셨다. "에구 기특하게 잘 견디네! 누가 입에 자갈을 물려 놓았누?" 소독을 하고 소독포가 덮혀졌다. 힘줄 때마다 관장액이 섞인 똥이 자꾸 나왔다. 별수 없이 조산사인 나도 똥을 쌌다. 창피했지만 부끄러울 겨를이 없다. 남들 다하는 회음절개를 위해 마취 바늘이 찔린다. 다음은 남들 다하는 회음절개다. 따듯한 것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마취된 부분은 얼얼했다.
뜨거운 것이 물컹 나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낳았다! 신생아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김옥진 님! 아기 보세요" 안아보지도 못한 채 갓 태어난 딸은 뻣뻣한 소독포에 싸여 신생아실로 사라졌다.
아기를 내보낸 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출혈도 없는데 1분에 120번 뛰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봉합하는 동안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마약 진통제는 결국 맞을 수 없었다. 국소 마취를 했지만 따끔거렸다. 산부인과 과장님은 "그냥 꿰맬 테니 조금만 참아요~" 미안한 듯 말했다. 팔에 하트만 수액 1리터도 꽂혀있다. 필시 자궁수축 제인 피 토신 10 unit가 섞여 있을 거다.
아이 낳고 태반이 나온 후 자궁수축이 잘 안되면 주려고 꽂아 놓은 것이다.
회음절개 봉합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호기 있게 뛰어 들어갔던 분만실, 나올 때는 휠체어 신세를 졌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1리터수액은 200cc만 맞고 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