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를 양갈래로 딴 동네산파에게 오세요.

살아가기.조산사의 삶

by 김옥진

여자의 머리카락은 다방면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징표다. 직업에 따라, 화려할 수도 단정할 수도 있다. 사회 초년생의 취업을 위한 머리 모양은 여자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소위 똥머리를 해서 단정히 묶어야 하고 검은 정장 스커트에 검은 구두를 신을 것을 요구한다. 취업준비 중이었던 딸도 그랬었다.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 다녔던 여고시절엔 머리 길이에 따라 학년을 구분했었다. 그냥 한번 묶는 건 1학년, 두 번 땋은 머리는 2학년, 제법 치렁거리게 긴, 세 번 땋은 3학년. 학주는 멀리서도 몇 학년인지 쉽게 알아보았다.
여고를 졸업하고 바로 커트머리를 했다. 기다란 머리칼이 미용실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은 마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터닝포인트처럼 여겨졌다. 속이 시원했다. 살면서 답답함이 벼랑을 향하면 숏컷을 하곤 했다. 그 후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르는 것은 새로운 다짐이나 울분을 털어낼 때 행하는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간편한 모습이 시들해져 갈 가을쯤 펌을 했다. 세련된 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할머니 펌이 나왔다. 엄마는 오랫동안 곱실거리는 것이 잘 나온 펌이라며 좋아하셨다. 얼굴은 앳된 것이 바글바글 라면머리라니. 세련됨과 거리가 먼 나, 가당치 않은 뻔뻔함을 갖은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뽀글이 라면 머리를 볼 수 있는, 키가 큰 친구들이 위에서 내 머리를 보고 '도토리' 같다고 놀려댔다. 그 별칭은 대학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유효하다.

간호사의 복장 중에 머리는 으뜸으로 중요한 차림 중 하나 었다. 어중간한 길이이면 영낙없이 지적을 받았다. 어깨에 닿으면 안 되고 앞 애교머리도 실핀으로 몽땅 올려붙여야 한다. 이마가 작거나 운동장만 한 친구들은 나름 콤플렉스를 가리고 다녔었는데 가운을 입어야 할 때는어쩔 수 없이 그런 이마를 내놓아야 했다. 사복을 입고 있을 때 모습과 가운을 입을 때의 모습들은 많이 달라서 우리들은 서로 대 놓고 깔깔거렸다. 나의 빠글이 라면 머리는 간편해서 좋기도 했지만 엉켜있는 펌은 간호사 켑을 잘도 지지해 주었다.

그 후 사는 동안 결혼식을 위해 조금 기른 머리를 했을 뿐, 대부분은 일반컷, 화가 났을 때 자르는 귀가 나오는 숏컷이였다. 대부분이 커트인 이유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는데 들이는 공이나 시간처럼 쓸데없는 것이 없다는 생각 이어서다.
또한 짧은 머리는 관리하기도 편하지만 커리어우먼을 연상케 한다. 빠릿빠릿하고 똑똑해 보여서 아무나 헤프게 다가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밤낮으로 불려 나가는 젊은 조산사 시절의 사진엔 그래서 짧은 머리뿐이다.

폐경이 돼서 여기저기 삐그덕 거린다. 아기를 받아내는 일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이제는 천천히 가도, 조금만 일해도 될 듯싶다. 게다가 출산율도 줄어서 후다닥 머리를 매만지고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흰머리도 이젠 애교 수준을 넘어섰다. 앞머리만 보면 내가 봐도 할머니다. 짧은 머리만을 고수하던 내가 지난 일 년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처음보는 긴 머리를 남편은 낯설어하지만 딸들은 이쁘다고 한다. '이쁘다?' 피식 웃는다. 미국의 유명한 자연출산 조산사 이너 메이(Ina May)도 엉덩이까지 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숱도 더 없고 거의 백발 수준이다. 그녀가 머리를 그 나이에 치렁거리고 다니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유명한 조산사를 따라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이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 울분 따위는 내게서 멀어졌다.
나에게 머리를 기른다는 또 다른 의미는 '서두름 없이 천천히' 다. 삼손은 머리카락에 힘이 들어 있지만 나의 긴 머리카락엔 그렇게 '여유'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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