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이 되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저녁 아홉 시만 되면 하품을 했었는데 지금은 새벽 한 시반이 취침시간이 되어버렸다. 가끔은 그 시간에 누웠는데도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렸던 것이 기억된다면 한참을 더 뒤척였음이다. 머리가 어디에 닿기만 하면 오분 내로 잠이 들었던 시절은 오간데 없고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가 될 줄이야. 한참을 풀석거려야 잠드는 그를 젊은 시절 자주 구박하곤 했었다. 거꾸로 된 요사이, 그는 내가 뒤척거리는 것을 모른다.
일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어 고되지는 않지만 밤에 아기를 받을 때는 예나 지금이나 리듬이 깨진다. 진통 시작부터 24시간은 산모가 출산센터에 와 있지 않아도 출산에 매여있다. 특히 초산은 며칠씩 대기를 한다.
새벽 2시, 세아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통화를 하고 나니 정신이 퍼뜩 든다. 일단 일어나 머리를 감고 얼굴을 매만졌다. 이제 시작이니, 둘째여도 서두를 것은 아니다. 느릿느릿 한 시간이 지나갔다. 한 시간 후 진통이 약해지다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고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간신히 밤 한시 반에 잠들었다가 두시, 세시에 상황을 지켜보고 나니 새벽 네시!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잔 건지 깨었던 건지 분간이 안 간다. 뒤숭숭한 꿈만 꾸었다. 꿈에 아기가 태어났다. 꿈속에서 아기를 받으면, 태어나는 아기는 대부분 건강히 태어났다. 세아의 둘째도 꿈에서 처럼 태어날 거다.
오후가 되도록 진통은 지지 부지하다. 10분 거리에 살고 있으니 진행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아직도 진통 간격은 6~7분이다. 25% 정도 자궁문이 열렸다. 새벽 진통으로 잠을 설친 세아는 오전 대부분을 잤다. 집으로 돌아가서 출산 후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어 놓는다고 했다. 장조림, 콩나물 무침, 가지볶음은 아기를 낳는 날 만든 특별한 반찬이다. 덩달아 남편도 새벽에 온 진통에 놀라 그동안 미루었던 아기마지 대청소를 한다고 집안을 뒤집어 놓은 상태란다.
만들던 반찬마저 만들고 남편의 집안 정돈이 끝나면 아기가 태어날 거다.
아기들은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면 태어나지 않는다. 참 영리한 생명들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출산에 대한 부부의 생각은 명확하다. 더 이상 출산에 약물이나 다른 이의 힘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나와 같다. 세아의 둘째는 그저 내가 해 온 데로 아기를 받으면 된다. 필요한 만큼의 진통과 참을 수 있을 만큼의 진통은 아이를 낳는 이나 태어나는 아기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두 생명은 당연히 건강할 것이다. 부부는 더 이상 궁금 한 것이 없다.
독일에서 첫아기를 둘이서 낳았다. 진행이 많이 되었을 때 아기를 받으러 온 독일 조산사는 심드렁하니 아기를 받고 가버렸다. 진통 내내 아내는 본능적으로 서있기를 원했다. 매달려 있는 아내에게 목이 아프니 다른 자세를 하자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남편의 첫아이 출산 경험은 한마디로 '힘들다'였다. 이번엔 안 힘들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번 출산의 모토는 '남편은 편안히~ 산모는 덜아프게~'
출산 준비를 마친 모두는 아기를 기다린다. 저녁 7시부터 본격적으로 오고 있는 3~4분 간격의 진통은 아기를 수월히 만날 수 있는 징조다. 작은 어미 몸속의 작은 아기는 본 괘도에 오르자 속도를 낸다. 둘라들의 지지와 남편의 손은 그녀에게 힘이 된다. 새벽부터 잠을 못 잔 어미는 그 와중에도 잠깐씩 코를 골며 쪽잠을 잔다. 갑자기 쉼 없이 몰아치는 '아기 방출 반사'! 쑥쑥 잘도 내려온다. 그녀는 하인 한 명과 시녀 세 명의 시중을 받으며 아기를 낳고 있다.
저녁 아홉 시가 다 될 무렵 2.6킬로의 딸이 태어났다. 탯줄을 목에 한 번 감고 태어나서 태반은 일찍 분리되었다. 아기처럼 태반도 작다. 예정일이 안돼서 태지도 많이 붙어있다. 둘라들도 돌아가고 고요한 밤이 되었다.
자주 젖 물리 기를 도왔다. 둘째인데도 어설프다. 첫아기처럼 다시 알려준다. 저녁을 먹고 와서 미역국은 새벽 두 시에 먹었다. 밥과 국그릇이 깨끗이 비워진 걸 보면 아기를 내보낸 몸이 정신을 차렸나 보다. 어미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느라 잠들지 못하지만 아기 아빠는 간간히 코를 곤다. 새벽 세시, 나도 잠시 등을 바닥에 대었다.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들은 것 같고 세찬 빗소리도 들은 것 같다.
눈부시지 않은 새벽, 여섯 시쯤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너무 피곤해서 두 어 시간 부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기 발도장을 찍고 키와 머리둘레를 잰다. 간단히 퇴원 설명을 하고 원하던 '남편은 편안히, 아내는 덜아프게'아기를 낳고 걸어서 돌아갔다.
예약된 오전 약속을 오후로 미루고 우선 잠을 잤다. 그동안도 전화기는 연신 울어댄다. 진동이 서너 번, 실눈으로 확인하고 대충 안 받아도 되는 것들은 덮어 두었다. 오전 11시, 일어나 남은 것들을 정리한다. 내 인생의 서른 시간은 세아의 출산을 돕는 것으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