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 수중출산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상담을 왔던 부부의 느낌은 평화로웠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 보였던 그녀가 셋째를 품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둘째를 낳으러 왔을 때 너무나 날씬한 그녀의 몸 때문에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기를 낳으며 출혈은 많지 않았으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지럼증이 있었고 다행히도 집으로 돌아가 곧 회복되었다.

그렇게 3년이 흘러갔다. 내심 셋째는 딸이길 원했으나 이번에도 아들, 아들 삼 형제의 엄마가 된다. 아들 셋 중에 한명은 딸 노릇을 할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집이 100km 떨어진 곳이라서 딱 한번 만난 후 아기를 낳기로 했으나 만삭의 몸으로 그 거리를 차로 오는 것은 무리일 듯싶었다. 마음이 또다시 흔들려 결국 한 번도 만나지 채 아기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꼬치꼬치 그녀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챙기는 일을 하기 위해 남편과 산모, 내가 들어간 단체 톡 방을 개설했다. 그 날 그 날 산모가 먹은 음식의 내용과 하루 동한 한 운동 등을 남편과 함께 점검 했다. 하루하루 오가는 단체 톡방은 그냥 늘어져 있었을 산모를 일으켜 세우고 부부사이를 더 돈독하게 해 주었다.

혹시 모를 출산 시의 출혈을 대비해 철분제와 비타민을 드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산부인과 진찰 상황은 전화나 문자로 주고받았다.

진통과 출산은 기본적으로 애씀이 필요하다. 애씀을 견디려면 아기를 품고 꾸준히 몸만들기를 해야만 한다. 몸만들기는 진통과 출산을 순조롭게 한다. 몸만들기? 별거 아니다. 열심히 사지를 움직이는 것! 몸을 아기를 담은 용기로 전락해 버리지 않는 것이다. 출산도 출산이려니와 아기를 낳고 회복되는 시간을 건강히 보낼 수 있다. 산욕기는 6주인데 그동안 갓난이에게 젖을 먹이고 대소변을 치워주며 밤샘을 하는 산모가 길게 휴식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 신생아기인 한 달간은 최소한 젖 먹이기 하루 열 번 이상, 대 소변을 본 기저귀를 열 번 이상 갈아줘야 한다. 다크서클, 멘붕, 사람으로서 하기 힘든 일, 등등으로 표현되는 이 기간 동안을 잘 견디기 위한 몸만들기는 그래서 임신한 사람들에게 필수다.

갈고닦은 체력과 자연출산으로 생긴 남다른 애착은 아기를 키우는 저력이 된다. 그동안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고 위로 역시 필수여야 한다.

과학이 제 아무리 발달해도 아기를 만나는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양수가 새고 진통이 시작된 채 회의를 마쳤던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보통의 임산부들은 출산 전에 집안 정리를 한다. 아무리 정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엄마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

진통이 오기 전 새 사람을 만나기 위해 두 아들의 물건들을 정리 하고팠던 그녀도 똑같았다. 한동안 두 아들을 챙기지 못할 것에 대한 미안함도 생겼다. 오늘 배송 예정이었던 아이들 방 가구들의 배송일을 진통이 시작되자 부랴부랴 변경했다.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더 생겼던 거다. 완벽함을 추구하고픈 출산준비도 미흡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예 안 보려고 정리하려 뒤집어놓은 아이들 방 문을 닫아버렸다. 단념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셋째를 낳는 것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다. 체념을 한다는 것은 가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아기가 정한 날은 오늘이다.

그 사이에도 진통은 오고 갔다. 아기가 태어난다고 하니 모두가 부산스럽다. 출산 예정일 즈음 오랜만에 오신 친정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시고 아래층 시댁에는 다니러 온 시누이 식구들이 북적인다. 눈앞엔 없지만 신경이 쓰인다. 만삭의 올케가 있는데 온 가족을 데리고 오는 시누이가 불편했다. 갑자기 입이 나오고 마음은 혼란스럽다. 좋은 소식이다! 잠시 후면 남편을 뺀 모든 식구들은 강원도로 물놀이를 간다고 한다. 두 아이들도 신나서 짐을 챙긴다. 엄마가 동생을 낳는 것을 보는 일보다 물놀이 가는 것이 훨씬 좋다.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고요가 자연스레 찾아왔다. 문득 섭섭함이 몰려 왔던 마음대신 아이 둘을 돌봐주겠다는 시누이가 눈물 나게 고맙게 느껴졌다.

아! 진통이 오는 지금, 생각지도 못한 신의 계획에 신실한 그녀는 놀람과 경외를 느꼈다. 두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와 헤어졌다. “ 엄마 아기 잘 낳으세요! 다녀올게요.” 아기를 낳을 엄마는 괜스레 눈물이 났다. 이유 없는 눈물을 이해하는가?

간간히, 진통은 5분 간격 전 후로 오고 간다. '미역 어디 있니? 고기는 사 두었어?' 딱히 할 일이 없는 친정어머니가 묻는다. 고요가 깨졌다. 아이 낳을 이를 위해 내가 나설 차려다." 어머님, 미역국은 아기 낳은 후에 끓이셔도 돼요. 잠시 그때까지 친구를 만나고 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연락드릴게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은 금세 이해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따~~~ 알, 아기 잘 낳아라! "이산가족 헤어지듯 어머니는 품에서 딸을 놓지 못한다. 친정어머니마저 나가시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공간엔 수중 출산을 위한 물 흐르는 소리만 남았다.

물을 받는 동안 그녀는 몸에 딱 맞는 수유 의자에 앉아있다. 그 의자는 진통 시 이완을 유도하기에 아주 적절해 보인다. 그녀도 그 의자가 좋다고 했다. 인터넷서 읽었던 라마즈 호흡법을 따라 하니 통증이 훨씬 줄어든다며 웃는다. 자궁문은 6cm 열렸고 아기는 아직 위에 있다. 창밖은 한여름의 볕이 내려쬐고 있지만 암막 커튼이 쳐진 거실은 정 반대의 분위기다.

진통을 도우러 따듯한 물에 부부가 들어간다. 둘째를 낳았던 조산원 분위기랑 닮았다며 남편도 분위기를 즐긴다. 진통하는 산모가 눈을 감고 간간히 웃는다. 아름답다. 사랑 호르몬인 옥시토신 호르몬이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한다. 점점 진통의 강도가 세어지며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미간의 주름마저 내려놓으라고 조언했다. 잘 따라 한다. 둘째를 낳은 차트를 보았다. '두려워 하지만 잘 따라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번에도 역시 나의 조언을 잘 따른다. 이 감사함이란. 이번 셋째는 세 아이 출산 중 제일 훌륭한 '청출어람'이다.

모든 것들이 완벽하다. 첫아기를 낳는 젊은 부부들처럼 두 사람의 눈빛에 사랑이 넘친다. 진통이 오가는 것은 그려려니 한다. 아주 조용히 힘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서 작은 소리로 응원을 한다. “ 조금 있으면 아기가 태어 날거에요. 아빠는 아기 받으실 준비 되셨죠? 긴장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처럼 순조로운 날엔 특히나요.” 눈을 마주친 남편의 얼굴엔 의연함이 그득하다. 그들과 쌓인 신뢰는 그 공간의 모든 부정을 사라지게 했다.

2~3분 간격의 진통이 버라이어티 하게 오고 있다. 이제는 따듯한 물을 선물할 차례이다. 기댈 수 있는 지형지물로 남편의 가슴을 선택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어쩜 이렇게 보기 좋을 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은 그 장소에 없다. 아 참! 사진을 찍어야지! 덩달아 황홀경에 빠져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셔터를 눌러댔다. 나의 맘도 사진 속 깊은 곳에 함께 넣어 찍었다.


몇 번의 휘몰이로 아기는 물속으로 나왔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아기를 건져 가슴에 안는다.

아내 왈 "정말 나왔네요. 아직 멀은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남편 왈 "이번엔 아내가 힘을 요령껏 잘 준 것 같아요. 우와! 하하하하하하!!!"

탄생의 감동에 아빠의 너털웃음이 더해졌다.

늘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생명이 청출어람 부부에게로 건강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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