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기를 버리지 않았다.

by 김옥진

남녀가 탯줄이 달린 아기를 주차장에 버리고 갔다는 뉴스가 나온 지 하룻만에 아기의 부모를 찾아냈다. 아기를 키울 여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했단다. 대부분의 방송에서 비친 남녀는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린 비정한 엄마 아빠? 혹은 철없는 젊은이들로 비쳤다. 아기의 상태에 따라 처벌의 수위가 다르다는 것도 앞다투어 나열하기에 급급했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에 인계된 아기는 다행스럽게도 병원에서 돌봄을 받고 있으며 건강하다고 했다.

나오는 뉴스마다 어두컴컴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남녀, 여자의 손에 들려 있던 흰 쇼핑백을 남자가 건네받고 주차장 한편에 쇼핑백을 내려놓고는 도망치듯 달려가는 남자와 멀찌감치 그 순간을 지켜보는 여자가 반복되어 보였다.


지금의 세상은 과정은 그리 중요시되지 않고 결과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우를 범하고 있진 않은 걸까.

신생아를 주차장에 버리고 간 결과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에게 일어난 과정을 한 번쯤은 생각해주고 싶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진통을 하고 아기를 낳은 산모, 진통하는 여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었던 남자. 남녀가 겪었을 막막하고 두려웠을 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만나온 산모들은 때맞춰 산부인과를 다니고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은 잉태한 산모를 위해 기꺼이 돌봄을 제공한다. 낳는 일 또한 복잡한 여러 과정을 거쳐 다양한 방법으로 아기를 낳지만 이 아기의 엄마는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병원을 갈 비용이 없었을 수도 있고, 단 한 명에게라도 임신과 출산이라는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혼인제도하에 잉태된 태아만이 환영받는 시대는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혼인하지 않은 여자의 임신을 손가락질하는 문화는 또 언제부터 생겨 났을까. 모든 임신과 출산은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하거늘 현대사회는 탄생의 시작부터 사회의 차별로 생명들이 버려진다.


살이 찢어지는 극한 진통으로 아기를 낳고 탯줄을 자른 후 후산을 했을 그 여자의 출산 자리가 가엾다. 기진한 몸을 이끌고 꼬물거리는 아기를 강보에 싸며 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쇼핑백에 넣어진 아기의 무게를 느끼며 먼길을 돌아 낯선 주차장에 도달했을 때의 마음은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다. 상식을 넘은 남녀의 행동이 그것을 반증한다. CCTV를 보면 여자가 아기를 들고 왔다. 엄마가 된 여자가 아기를 안고 온 거다. 감히 여자는 아기를 버릴 수 없었는지 남자에게 아기를 건넨다. 아기를 건네받은 남자는 아기가 다치지 않도록 벽가까이에 내려놓은 조심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나 몰라라 휙 내던지지 않았다. 큰 죄를 지는 마음이 들었는지 남자가 갑자기 후다닥 뛰어 도망가며 멀찍이 서있던 여자의 손을 잡고 화면에서 사라졌다. 자꾸 되풀이되는 이 장면에 또 가슴이 아프다.

이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이 세상에 화가 난다. 임신한 것이 죄인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을 걱정하고 있다. 남녀에게는 아기를 유기했다는 사실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도움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남녀가 다시 아기를 데려가 키우는 것, 사회가 남녀가 제자리에 설 수 있도록,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에서 도와야 한다. 벌을 주는 것 만이 해결책이 아님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챙기지 못한 부분에 대한 일말의 책임의 이유로 법은 남녀에게 일부분 선처를 해야 한다.


그 가족 모두, 몸과 마음의 상처가 하루빨리 아물기를 바라며 아물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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