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Nov 27. 2022

긴 시간을 견디며 태어난 자연출산 아기"바다"

아기를 낳다

새벽 한 시, 저는 아기를 받으러 길을 나섭니다. 길 위엔 지나는 차들도 없습니다.

산모는 양수가 나온 지 열두 시간이 지나갑니다. 진통을 촉진하는 테라피를 받은 후에 다행히도 진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삼사 분간 격의 진통이 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나가고 이삼 분 간격으로 좁혀졌지요.

30% 진행되어 있었습니다.  열린 줄만 알았던 양막도 굳건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분명 양수는 조금씩 흘렀었지만요. 입원한 새벽 두 시부터 우리는 여러 동작을 바꿔가며 밤새 정말 열심히 움직였어요.


남편의 도움은 필수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밤을 새우며 아내를 돕는 모습에 사랑이 느껴집니다.

얼굴을 파묻는 것은 외부와 차단하겠다는 새끼를 낳는 어미의 본능적 자세랍니다. 그래서 어둡고 조용한 출산 환경은 아기마지를 수월하게 하지요. 아이 낳는 사람이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거나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말을 한다면 아직 아기마지가 멀었다는 이야깁니다.


말이 없어지면 표정도 사라집니다. 진진통임에 틀림이 없지요. 그런데 이 처자는 진통이 가면 남편을 보며 정말 예쁘게 웃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들은 제각각이지만 이분들의 찐 사랑에 감동이 몰려옵니다.

출산 현장에서 아기 낳는 산모는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산모뿐이 아니라 아기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되어요.

골반 돌리기, 무한대 모양으로 움직입니다.

새 생명은 무한대이기 때문입니다.

힘주기에 들어갔습니다. 산모는 수없이 힘을 주고 이완을 합니다. 사진 밖 저희들도 구령을 붙입니다.

볼우물이 쏙 들어가고 동그랗게 놀란 토끼눈을 하며 남편도 산모와 함께 힘을 보탰답니다.


간간히 산모는 갑자기 열이 나고 땀이 납니다. 부채질은 남편 차지, 땀 닦기도 그렇습니다.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 있습니다. 고단한 산모는 잠깐씩 깊은 잠도 자지요. 자연출산은 원래 이런 모양새입니다. 빨리 힘주라고, 빨리 나오라고 보채지 않아요. 몇 분의 쉼은 산모에겐 정말 꿀맛이거든요. 태아도 덕분에 꿀맛의 휴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힘주고, 또 힘주고

무한 반복합니다.


언제나 끝이 나냐고 산모가 묻습니다.

글쎄요. 한 다섯 번의 진통이 온 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진통의 강도와 간격이 유지되기만 한다면요.

또다시 힘주고...

오!!!! 아기가, 바다가, 태어났습니다.

아빠의 큰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저도 코끝이 싸해졌지요.

여보 울어요? 방금 아기 낳은 산모가 남편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아드레날린으로 무장되어 있는 전장의 승자는 울 겨를이 없습니다. 아직도 힘이 남아있어요. 출산 후 산모가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출산 호르몬은 막바지 힘을 내고 있거든요.

자연스레 태반이 나오고 탯줄이 잘린 바다는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건강하고 똘망똘망합니다.


남편은 오늘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다의 탄생과 탯줄 절단식을 간신히 마친 후 산모에게 몇 번의 뽀뽀를 남기고 총총 일을 보러 가셨답니다.

발걸음이 어찌 떨어지셨을까요.

남편을 대신해 외할머니 부부가 오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산모가 낳은 딸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엄마가 된 딸이 자랑스럽기도 하셨답니다.


이상, 건강하고 똘망똘망한 자연출산 아기, 바다의 탄생기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뚝딱이가 태어나려 합니다> 뚝딱이가 태어났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