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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Dec 03. 2022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넘다.

일상

물론 이번 포르투갈전에서 이기기를 바라지. 뭐든 지는 것은 싫거든. 하지만 이번엔 티브이 앞에 앉아 있기가 싫더라. 다친 몸으로 뛰는 선수들이 안타까워 보고 싶지가 않더라고. 수술을 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손흥민 선수가 가장 걱정되었어. 결국 사람 사는 것은 살아있어야 하는 거잖아. 기우일지는 모르겠지만  몸싸움이나 헤딩을 하다가 잘못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지. 오죽하면 블로그 노티스에 손흥민 선수의 무사를 기원한다고 써 놓았을까. 마스크 뒤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볼 때마다 절실하게 기도를 했어. 우습지? 그런데 그렇게 되더라고. 가나전에서 졌지만 무사했으니 다행이라,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고!"를 많이도 말했어.

가나전은 그럭저럭 치킨도 시키고 맥주 한 모금 마시며 지켜봤었지. 결국 패배는 했지만 온 가족끼리 즐겼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어. 과년한 자식들이 함께 한 목적으로 앉아 즐긴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니까. 축구보다는 그 공간이 좋았는지도 몰라.

가나전은 밤 열 시에 시작했는데 더군다나 이번 포르투갈전은 열두 시라네. 그래도 그동안 공들여 쌓은 선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싶어 경기를 보기 위해 초저녁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어. 사실 일어나면 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심정을 고백해. 요즘 들어 그런 삶의 태도가 나를 편안하게 하거든. 남자가 진즉부터 켜놓은 시끌벅적 TV 중계 소리가 어슴푸레 들려 눈을 떴지. 아홉 시!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지 뭐야. 일단 눈곱 먼저 떼고, 낮에 장본 시금치, 콩나물을 무쳤어. 그저 자동으로 부엌으로 가는 발걸음, 요걸 타파하는 중이지만 어디 살아생전 할 수 있을까 몰라. 종일 세끼 차려내는 남자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네. 뭐 나물 삶고 무치는 것쯤이야. 내 삶의 모토 "빠르고 정확하게"가 또다시 동했지. 두 가지나물을 무치고도 시간이 남았어.


다시 방문을 열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책을 읽었어. 밖에서 들리는 축구 해설 삼총사의 말소리는 내 맘과 상관없이 고막을 두드렸지. 나보다 35년 먼저 태어난 '존 버거, 사진의 이해'를 읽었어. 시대적 배경을 깔고 쓴 글이라서 그런지 불쑥불쑥 불편함도 읽혀져. 결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니 조금 이해가 가더라. 수많은 상황들에서 인간들이 지금껏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공통분모가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같다'  요거.

"평화를 좋아하고 억압은 싫어."요런 거. 사진을 찍던, 글을 쓰던, 우리 모두는 위로받고 사랑받길 원하더라고.

경기가 시작된 소리가 들렸어. 포르투갈을 이겨야 16강에 들어간댔지. 그래야 그동안 선수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안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또 올라왔어. 존 버거 책이 중요하냐,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이 중요하냐? 엉거주춤 중간에 떠서 짧은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밖에서 들리는 축구 해설도 들었어. 이렇게 멀티가 되는 듯했지만 단 한 개도 온전치 못했지. 선제골에 먹히고 실망의 소리들이 들리더니 드디어 동점골을 넣었다네. 휴! 그래도 여전히 침대 위에서 거실에서 들려오는 오디오를 듣고 있었어. 양 팀 모두 열심히 골문을 두드리는지 거의 막바지 환호성과 탄식의 소리가 드디어 나를 일어서게 했어. 몇 분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해. 막바지 사투를 벌이는 선수들을 눈으로 보니 더 간절하게 기도가 나왔어. 90분이 넘어가는데도 팔팔해 보이는 선수들이 대단해 보였어. 그래 몇 분만 더 버텨라. 다들 무사하니 됐어!

순간! 골 하나가 포르투갈 골대로 들어갔지. 시간은 두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 잠이 달아났어.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 남자와 함께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어. 뜨문뜨문 있는 시골집들, 그중에 하나, 홀로 떨어진 집, 그 안에서 외쳐댄다고 들을 이는 한 명도 없겠지만 우리 집 마루는 카타르의 스타디움이 되었지. 그제야 포르투갈전을 처음부터 정주행하고 보았어. 이긴 게임을 보는 것은 본 게임을 보는 것보다는 쫄깃 감이 덜하긴 하지만 심장에게는 무리가 가질 않지. 느긋이, 천천히, 미소를 머금고 재방송을 보았어. 이제 16강에 들어왔으니 다음 경기도 포르투갈전처럼 봐야겠다고 결정했어. 16강 첫 상대는 브라질! 정신 차리면 이길 수 있지! 모두들 무사히, 열심히 뛸 태극전사에게 온 마음으로 응원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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