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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Dec 27. 2022

걱정많은 남편&걱정없는 남편

아기를 낳다.

요즘 많이 걷는다. 짧은 내 다리로 10,000보를 걸으면 약 6킬로를 걷게 된다. '성실함을 버리면 건강해진다'라는 말이 있지만 걷는 것에 대해서는 성실함을 유지하고 싶다. 하루 종일 산모를 만나야 하는 오늘, 조산원까지 걸어간다. 2000보를 걸어가면 나의 일터다.

첫 만남은 가정 출산을 준비 중인 지현의 두 번째 방문이다. 병원 출산 경험이 있는 그녀는 좀 더 편안하게 집에서 둘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걱정이 태산이다. 당돌하게 느껴지는 말은 마치  상관의 검열 같다. 어찌 이런 일이 한두 번이겠냐마는 두려운 종족들의 질문들은 다양한 얼굴 표정과는 달리 대동소이하다.

나 역시 그들을 검열한다. 얼마나 웃는지, 사이가 좋은지, 함께 온 아이와 노는 모습은 어떤지, 이번 아기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 인지를 매의 눈으로 확인한다..(그는 지현의 몸과 마음을 내가 일차 검열한 것을 알지 못한다. ) 검열로서 그로부터 전해진 불안을 잠재운다. 첫 만남보다 부드러웠으나 역시나 남편의 소소한 질문들은 손톱 밑 가시처럼 계속되었다. 하지만 하나 둘 지연에 대해 알아가며 나의 마음은 점점 말랑해진다. 출산까지 세 번의 만남을 더 가질 것이다. 더욱 완벽한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지연이 튼튼해지도록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하루에 5000보씩 걸으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숙제를 게을리한다면 아기 받기를 고려해야 한다. 열심히 걷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출산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두 번째 산모가 도착했다. 첫 아이를 나와 함께 낳았던 혜진이다. 남편의 지지로 임신 초기부터 조산원 출산을 준비했다. 그녀의 과거 기록을 보니 앞 뒤로 그득히 진행과정이 적혀 있다. 골반이 작아 허리 진통으로 2,9킬로의 아기를 오랜 시간, 참 어렵게 낳았다.

긴긴 시간의 기록, 그곳의 모두가 애썼다는 증거다. 자칫했다간 제왕절개를 했을 터, 고비고비 잘 견디었다. 태아 역시 힘이 들어 심박동 수가 널을 뛰는 통에 가슴이 쪼그라들었던 기록도 있다.

기다랗게 고깔머리를 하고 세상에 온 우주는 간신히 첫 호흡을 했다.

태명이 우주였던 녀석은 그 이름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멋지게 자라 내게 배꼽 인사를 하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동생의 태명은 보석이라고 우주가 지었단다. "보석"이라는 단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여자 동생이었으면 하는 우주의 바람이 들어 있다. 

오래 젖을 먹이고 신뢰로 자란 우주는 어떤 분리 불안도 없이 맑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이쁘다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놀다가도 갑자기 엄마에게로 달려와 목을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뭐 남자애가 저럴까 싶다. 혜진은 우주를 남편보다 훨씬, 아주 많이, 사랑하는 '작은 사람'이라고 내게 귀띔한다.

자유롭고 사랑 가득한 심성을 가진 우주를 키우며 자연출산의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고 했다.   "달라요! 달라!  딱히 뭐라 말할 수는 없는데 정말 달라요!"

우리는 무슨 큰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되는 듯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번에도 남편은 조산원 출산을 결정했다. 남편의 확고함은 아내의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우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빠를 좋아할 딸이 생겨 너무 좋단다. 보석이는 태내 나이에 맞추어 잘 자라고 있다. 말랑할 딸 보석이는 아들 우주보다는 수월할 거라고 용기를 주었다.  

나를 긴장시키는 걱정 많은 지현 남편과 외려 나를 이완시키는 혜진 남편과는 대조적이다.

점심시간이 충분치 않아 300보 정도 가면 자리한 분식집 김밥을 먹었다. 지긋한 두 중년 아주머니가 금방 한 밥으로 김밥을 싼다. 가게는 작아서 다섯 발자국만 가면 주방이다. 느린듯한 동작이지만 어느새 뚝딱 김밥 한 줄이 나왔다. 아직 식지 않은 밥알이 맛있다. 김밥을 만든 후 그들은 계란 한 판을 삶아 샌드위치 속재료를 준비한다. 이렇게나 많이 삶냐고 물었더니 보통 하루에 두 판은 필요하단다. 좁지만 넓은 들판 같고, 느리지만 뚝딱 요술을 부려대는 두 아주머니는 세월의 맛을 더해 맛을 낸다. 그들은 김밥과 샌드위치를 만드는 노동을 하고 나는 아기를 받는 노동을 한다. 그들의 손과 나의 손은 노동을 한다는 것과 세월이 만들어낸 연륜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빠릿빠릿한 청춘을 지나, 느리지만 맛깔난 지금이  어느 모로 보나  풍요롭고 느긋하다.

나의 풍요가 걱정 많은 지현네 둘째 맞이를 수월하게 만들기를, 더불어 더 풍성할 혜진의 출산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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