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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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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Feb 03. 2023

나와 함께 아기를 낳았던 그녀들이 보고싶다.

산파일기

2002년에 시작한 조산원, 오늘 딱 20년이 되었다. 아기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고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도 시간을 지나쳐 커간다. 대학을 간다던지, 군대를 간다고 소식들을 전해 온다. 처음으로 학부형이 되었다고, 첫 뒤집기를,  첫걸음을 떼었다는 소식들이 전해 질 때마다 마음이 풍선같이 하늘로 오른다. 촉촉한 보드라운 살을 가슴에 안았던 엄마들은 그 세월 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까. 아이들 키워 내느라 하나씩 주름이 늘어난 오래된 그녀들을 보고 싶어 진다.

어젯밤엔 차근히, 기억에 남은 아기를 낳고 간 사람들의 이름을 되새겨 노트에 적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아기를 만나러 온 횟수가 많은 엄마들이 더 기억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명을 낳았지만 나름  나의 뇌리에 각인된 여자도 있다. 각각의 사연들, 그들이 기억하는 나와 내가 기억하는 그들, 많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딱 한 가지 가슴이 벅찼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 생명을 어미의 가슴에 안겨주기 전, 그 짧은 순간의 경이로움, 그곳의 어느 누구보다 제일 먼저 아기는 나의 미소를 본다. 괜찮지? 수고했다! 기특도 하지! 그 많은 단어 중 몇 안 되는 묵지근한 짧은 단어들엔 우주가 들어 있다. 길고 긴 인생의 징검다리 중 제일 먼저 디딘 첫 돌. 고운 맘 가득 담아 어미의 맨가슴으로 보낸다. 그런 순수가 어디에 있을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은 최상의 순수다.


다들 잘 있겠지. 기억을 되살리다 밤을 새울 뻔했다. 수백 편의 영화를 단 몇 시간 만에 볼 수 없어 짧은 장면들만 음속의 속도로 지나쳐 갔다.

참 모두들 수고를 하며 살았다.

그리고 잘 살아갈 거다.


이제 함께 나이 먹어 가는 아기 낳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의 기억과 나의 기억, 기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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