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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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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Dec 18. 2022

변신

산파일기

옳지!  

아니 아니 그렇게 말고!

출산 리허설에서 배웠잖아요!

아래로 똥 누듯이 힘을 주라고!

그렇지!  옳지! 어이쿠 잘 내려온다!

난 아기 머리 봤다!

힘냅시다!

쉬고! 쉬고! 이완! 이완!

잡은 손 놓고, 터얼썩!!!


응애!


오늘도 갓 태어난 생명이 내 손위에서 버둥거린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한곳으로 모아지는 이 순간, 한숨에서 안도로, 연이어 미소로 바뀌는 감정의 터널을 지나면 하루 중 가장 큰일이 끝난다. 갓난이에게 어미젖을 물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면 작은 부엌에서 풍기는 미역국 냄새에 힘이 솟아나며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애쓴 삼신 할매니까, 아무도 모르게 제일 먼저, 선채로, 뜨끈한 미역국을 들이킨다. 내가 만든 미역국은 셀프 찬사가 반찬이다. 목으로 넘어가는 미역국 넘기는 소리는 고요한 공간 안에서 국그릇이 비워질 때까지 계속된다.

애쓴 어미가 미역국을 먹는 동안, 맨살의 아비 가슴에 갓난이를 안겨준다. 생애 최초로 갓난아기의 살과 맞닿은 남자는 두려움 반, 감격 반, 원했던, 그렇지 않던, 어린 것의 아버지가 된 것을 실감한다.

아기를 낳으러 온 사람은 출산 한 지 네 시간이 지나 아기를 데리고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감격을 꺼내 서로를 안는다. 잘 가라. 건강하거라. 애쓰며 열심히 살 거라.


엄마 아빠를 만들어준 수고비는 플라스틱 머니로 결제되고 약 이틀간 컴퓨터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통장에 아라비아 수자로 찍힌다. 그래도 낯 뜨겁게 현금을 받던 과거보다 돈 같지 않은 플라스틱 머니를 받는 마음이 더 편안하다.

몸과 마음을 몽땅 털린 아기를 받아 낸 날엔, 터덜터덜 고깃집 가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대부분 스스로를 조산사라고 소개한다. 홀로 앉아 생각을 해 보니 조산사라는 직업이 나일까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조산사라는 공식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조산사가 아니면 뭘까? 살면서 자주 이 질문은 평생 나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다. 변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오면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다시 돌아오곤 했다. 지금껏 조산사로 살아온 것을 보면 여러모로 조산사로 사는 것이 편안했고 직업이 주는 행복감도 한몫을 했음이다.


그래도 종종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 또 다른 세계를 만나고 싶은 욕망이 슬금슬금 솟구친다. 평생 한 가지 직업으로만 살고도 아직 안갯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지금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할 수 있어! 아냐! 이제는 그만해도 돼!

마음속 지킬과 하이드는 지금까지도 늘 서로 부딪친다.


나의 변신은 이 년 반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말이 이 년 반이지 어떤 때는 단 한 문장도 써가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는 '성실'이라는 히든카드가 있었다. 글 한 문장 못 썼어도 낯두껍게 모임에 나가 앉아 있었다. 다른 이들이 써온 글을 듣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니 손해 볼 것도 없고 젊은 여성들과 함께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쉽게도 우여곡절 끝에 글쓰기 모임은 해체되었으나 모임을 하는 동안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줄곧 sns에 글을 썼다. 글쓰기에 대한 책들도 읽고 인터넷 강의도 들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가 대부분인 주제였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펴낸 강원국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잘 살아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그 한 문장에 철커덕 꽂혀버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라는 화두는 그 후 나의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글 쓰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나의 글은 쓰레기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하는 부지런함도 부족하다. 그래서 내가 살자고 만든 두 번째 화두는 '그냥 마구 쓴다'가 되었다. '전공도 아닌데 이만하면 되었어' '먹고 살 호구지책은 있으니 되었어'

아마 글을 써서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삶을 살았다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가 십상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마구 쓴다. 글쓰기에 위로받고 글쓰기가 점점 좋아진다. 부케로, 변신으로, 나는 글 쓰는 작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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