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파일기

터울 15년은 잊어라

산파일기

by 김옥진

'이것이 이슬인가요? 끈적하고 투명해요. 수축이 여느 날 보다 자주 오긴 해요. 아직 통증은 시원찮고 약한 생리통정도예요 아직 2주나 예정일이 남았는데 벌써 태어날까요. 그래도 조산원과의 거리가 머니 얼른 일 정리하고 올라갈게요. 큰아이는 그냥 학교에 있으라고 하려고요. 그리고 남편은 오늘 치과 치료가 있어서 내일이나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버스를 타고 갈 건데 세 시간 반 걸려요. 수원 터미널로 친정아버지께서 마중 나오시기로 했어요.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아마 저녁 7시 반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점심때쯤에 나눈 대화는 그저 막달 산모이면 누구나 한두 번쯤 해볼 대화이다. 이슬이 비쳤다고 바로 본격적인 진통으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첫아기도 수월히 낳았고 지금 임신 38주가 넘었다. 언제 낳아도 이상하지 않다. 오늘은 잠깐 쉬다가 내일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다. 단지 올라오는 도중에 본격적인 진통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후에는 '인생 첫 책' 마지막 모임이 있다. 다섯 달간 매주 월요일에 두 시간씩 모임을 했다. 그동안 꼭지글 50개를 모았다.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이다. 나의 글들이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 그러나 살면서 꼭 맘에 드는 결과들이 얼마나 있을까. 끝도 없는 욕심을 내다간 망치기 일쑤인 것을. 부족하지만 꺼내진 오십 개의 글들은 다섯 달 동안 나름 일목요연해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내가 보기엔 그렇다.

모임 중간중간 산모와 통화를 했다. 광주를 통과하고 있는데 진짜 진통같이 수축이 생겼단다. 조산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더 이상 세어지지 않기를 같은 마음으로 바랬다. "아가야! 조금만 잘 참고 도착하거든 태나거라!" 어떤 조산사라도, 출발한 산모도 이런 기도를 했을 거다. 씩씩하지만 불안할 그녀에게도 무언의 기도를 보냈다. 그녀는 길 위에 있고 나는 나의 할 일을 한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한다. 그녀의 오는 길엔 구름이 비껴가기를. 수중분만 풀을 준비하고 오자마자 낳을 경우의 수에 대비해 출산기구도 모두 준비했다.

부재중 전화가 두통이나 와 있다. 오다가 그냥 응급상황이라 병원으로 간 걸까? 오만가지 생각에 가슴이 둥당 댄다. 그로부터 10분 후 산모는 무사히 조산원에 도착했다.

8cm 개대, station-1, 아기 심박동 수 정상, 양막은 아직 터지지 않았음.

한 시간 전후로 출산이 될 거라고 설명을 했다. '위의 아이와 오 년 이상 터울이 지면 첫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 사실 나는 슬쩍 그 말에 기대를 했다. 무려 이 산모는 15년의 터울이 있으니 말해 뭐 하랴. 그런데 말짱 다 틀렸다. 이 산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도착시간 오후 7;40, 출산시간 8;11분, 4.02킬로.

머리가 아주 커서 아두 만출이 좀 어려웠다. 회음을 보호하느라 내 팔과 손목은 죽는 힘을 다해 애를 써야만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기가 컸다. 임신 막달에 노력한 운동과 식이조절을 했는데도 결과가 이렇다. 만약 조절을 하지 않았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남편대신 친정어머니가 출산방 밖에서 기다리셨다. 친정어머니의 복잡한 심경을 느꼈는지 산모는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단초로운 두 명, 한 사람은 아기를 낳고 남은 한 사람은 아기를 받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