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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Feb 13. 2023

내가 받고야 말겠어!(휘온과 단휘 탄생기)

아기를 낳다

막달이 다 되어 아담한 체구의 산모가 상담을 하러 왔다. 좀 더 일찍 와서 교육을 받고 건강하게 임신기간을 보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이 여자를 어떻게, 무엇을 믿고 아기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일었다. 혹시 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하라고 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라는 의혹도 일었다. 아주 드믈게 문제가 있는 산모들이 문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아기만 낳겠다고 오는 경우가 있어서이다. 일단 이야기를 해 보자. 한 시간이 넘도록 사사로운 질문과 필요한 질문들이 오고 갔다. 필요한 질문은 필수지만 사사로운 질문으로 그들을 파악하는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나운 대화로 나의 걱정은 서서히  무장해제되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을 철석같이 듣는 남편, 사랑가득한 눈빛,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종교관, 뭐니 뭐니 해도 결혼 전 코이카 봉사단원이었다는 산모의 경험에 걱정 가득했던 내 가슴의 돌덩이가 하나 둘씩 내려갔다. 봉사를 마친 후 혼자서 일 년간 남미도 여행했다고 했다.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었던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이런 매력덩어리! 그녀의 아기를 받는 내가 더 영광스러울 것 같았다. 당차고, 똘똘하고, 정의롭기까지 한 그녀의 성정에 그녀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 나는 흰 깃발을 들었다. 꼭 내손으로 아기를 받아주고 싶어졌다.


"몸집 작은 엄마의 아기는 대부분 작은 몸집에 맞게 자란다.

설사 골반이 작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지금껏 살아온 강인함으로 충분히 진통을 이겨낼 것이다.

군소리도 없을 것이며 야비하지도 않아 보인다."

내가 아기를 받기로 결정한 이유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고 아기가 수월히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아기는 스스로가 애써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는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몸집 작은 산모의 좁은 골반은 오랜 진통을 필요로 했다. 함께 견딘 아기는 길쭉 해진 머리를 하고 태어났다. 아기를 낳은 후 치골이 벌어져 걷기도 힘들었고 움직이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변도 누워서 보고 거의 업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산후 회복은 그래서 보통의 산모들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ㅇ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고 별 치료법도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예상대로 그녀는 정말 꿋꿋했다. 그런 몸으로 젖을 먹이고 아기를 돌봤다.


사랑 가득 찬 엄마의 눈길로 자란 녀석은 간간이 놀러 와서 나를 기쁘게도 해주었다. 일반적인 애착의 과정도 남달랐는지 유달리 아기를 이뻐한다. 뭐 자기 자식 안 예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유독 돈독한 모습이 눈에 띈다. 엄마의 눈은 한시도 아기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니 아기는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내게 오라고 두 팔을 내밀면  거침없이 덥석 안긴다. 이미 오래전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휘온이 너무 이쁘죠 선생님, 저렇게 예쁜 아긴 세상에 한 명도 없어요. 그렇죠" 그녀는 똑같은 소리를 머무는 내내 했다. 휘온이 아빠는 그저 싱글벙글, 드문드문 아기 돌보는 손길도 베테랑이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갈고, 아기의 손을 씻기며 안아준다. 아기의 모든 요구는 아빠로 향한다. 아빠와 친한 딸이다.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이라고는 작은 골반을 내려오는 아기를 조금 더 참고 기다려 준 것, 첫 발돋음에 부드러운 손길을 내어 준 것뿐이다. 


이 년이 지나 둘째 아기의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첫아기를 힘들게 낳았더라도 둘째들은 첫아기보다 훨씬 수월하다. 워낙 좁은 골반때문에 치골도 벌어졌으니 둘째지만 걱정이 되었다. 아기를 크게 키우지 않아야 하고 먹는 것 조절, 운동도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러나 쇠 귀에 경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걱정스러웠다. 대부분 첫 임신은 몰라서 두렵고, 둘째는 알아서 더 무섭다고들 한다. 그녀도 그랬을까? 두려움을 아무 감정이 없다고 표현했다. 임신 초기의 메스꺼움, 피곤함에 대해서도 그저 무감각하다고 했다. 슬쩍 우울감이 왔을 수도 있다. 격려하고 칭찬하고 위로를 보냈지만 특별히 변화가 없는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몇 번의 달이 차고 기울었다. 만삭의 배는 몸을 지치게 만든다. 그녀에게 운동을 격려했지만 자꾸 눕고만 싶고 벌써 치골 통증도 있다고 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 이이를 어쩔까! 예정일을 3주 앞둔 출산 리허설, 만나기로 한 날, 문을 연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남편이 한 손엔 휘온이를, 또 한 손엔 케이크를 들고 인사를 한다. 뒤에 있나 싶었던 휘온 엄마는 없었다. 너무 힘드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단다. 그랬다고 혼자 온 남편은 또 뭔가!

산모가 빠진 출산리허설을 하는것은 내 인생에서 최초였다.


며칠 있으면  출산 예정일, 연말의 들뜬 분위기로 거리가 반짝였다. 덤덤하게 이슬이 비쳤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들과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차근히 준비를 한다. 진통 간격이 좁아지고 출발을 알려왔다. 소박한 탄생의 집에도 열기가 오른다.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은 아직 평평하다. 드물게 오는 강한 진통은 첫애의 산통 기억을 불러오지만 아주 잘 견딘다. "벌써요? 정말요? 그렇게나 많이 열렸다고요? 아직 견딜만한데?" 60% 이상 진행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모두들 귀를 의심한다. "요 녀석! 효녀군요. 삼십 분만 있다가 따듯한 물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한두 시간 내에 둘째를 만나겠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진행이 빠르네요. 다행이예요. 이번엔 치골이 무사하길 바래요." 새 생명이 태어나는것은 결국 내가 하는 일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아는 나의 말 또한 그녀처럼 평평하다. 첫애 낳을 때 멤버,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따듯한  온수는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 힘이 주어지자 스르륵 미끄러진 둘째가 헤엄을 치며 물속으로 나왔다. 눈을 뜬 녀석은 물속에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를 보았다. 천천히 엄마가 아기를 안아 올렸다. 탯줄이 짧아 가슴까지 올라가려면 탯줄을 잘라야 했다. 첫 호흡까지 5초, 여러 사람의 눈이 아기의 얼굴에 꽂혔다. 세상의 어느 눈길이 이보다 사랑스러울까! 둥당거리던 엄마의 두려움은 아기를 보자 따듯한 물속으로 스러졌다.


이번엔 짧은 진통으로 치골도 멀쩡하다. 회음 손상도 없다. 첫 젖 물기도 잘한다. 미역국 2인분도 깨끗이 비워졌다. 출산 후 다섯 시간 정도 지나 씩씩하게 걸어서 집으로 간다.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다.


둘째 효녀는 단휘라고 이름 지었다. 해가 바뀌는 명절 전날, 단휘네 집으로 갔다. 꽃집에 들러 꽃도 사고 나무이야기 책도 한권 챙겼다. 아기를 낳은 딸을 위해 집에 들른 친정어머니는 내가 그곳에 머무는 내내 부엌에 서 계셨다. 핏물을 뺀 소고기가 압력솥어서 일차 익어가고 다듬은 당근과 양파 감자가 그 뒤를 이어 양념과 만났다. 간이 배지 않은 고기 한점을 굳이 먹어보라며 접시에 내어놓은 마음, 부지런한 손은 과일을 깍아 잘라 또 한접시가 식탁에 차려졌다. 나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어머니의 등만 보았다. 

어머니가 있어 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도 어머니처럼 두딸의 어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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