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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Feb 03. 2023

겨울 속초바다

코끝 시린 바깥 날씨는 겨울 햇살에 잠시 노곤하다. 나뭇가지들로 어지럽혀진 마당엔 부지런한 동생의 발자국들이 와글거린다. 동해바다를 보러 가자는 제안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배고프면 먹고, 추우면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책을 읽었다. 슬금 다가왔던'지루함'은 '동해바다'라는 말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줄행랑을 쳤다. 겨울산은 좋아하는 흐린 베이지색, 한계령 가까이엔 흰색 붓칠로 그라데이션 되어있다. 내려가기 시작점이고 애써 올라온 꼭대기라서 정상은 쓸쓸하다. 긴 한숨을 버리고 또 한숨을 머금는다.

한계령의 바람은 언제나 거세어 찻집에 들어갈 짬을 주지 않는다. 그저 바람을 피해 작은 몸뚱이를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태백의 봉우리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다. "춥지? 조금만 잘 견디렴. 새싹이 오르고 봉우리가 펼 때쯤 나도 다시 올게" 저 멀리 속초 바다가 보이고 꼬불꼬불 멀미 부르는 길이 끝나자 겨울바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넘실거린다. 나이 먹어 점점 거만해지는 나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초록 겨울바다 앞에 선다. 듬성듬성, 지난 폭설의 흔적이 모래 위에 새겨있다. 흰 눈 발자국과 모레 발자국이 햇살에 스러지고 바람에 지워진다. 가슴 깊숙이 숨어 있는 이야기는 바다 위를 지나쳐간 수많은 배들 해변 바람 냄새에 살고 있다. '그때 겨울 바다색도, 흰 파도도 똑같았어' 여전히 피 끓는 심장은 기다랗다가도 짧아지는 파도의 리듬에 춤을 춘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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