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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y 01. 2023

엄마간장, 아기간장

홍천서 만드는 음식

 지난 2월, 홈쇼핑에서 파는 된장 만들기 세트를 샀어요. 보내온 소금과 띄운 메주, 심지어 생수 물 여섯 통까지 보내주셨답니다.

설명서와 방송을 본 기억을 꺼내 순서대로 큰일? 을 마치고는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시골에 들어올 때마다 자주 들여다보았어요. 부정 탈까 봐 뚜껑은 딱 한 번만 열어보았지요. 착한 곰팡이가 숯에 달라붙어 있었어요.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답니다. 장을 담근 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꼭 4월엔 메주와 간장을 분리하라고 된장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살아가면서 꼭 때를 맞춰해야 되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된장 만들기도 그랬습니다. 삭힌 메주를 분리해서 보관할 항아리 소독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그동안 작은 근심을 달고 살았어요.


  드디어 지난 수요일, 된장을 가르기로 작정을 했지요. 우선 항아리 소독을 해야 했어요. 담근 된장의 양에 맞는 작은 항아리를 골라 끓는  물 위에 엎어 놓고 수증기로 30분간 소독을 했습니다. 뜨끈해진 항아리가 자연스레 마르기를 기다렸어요. 모든 숙성되는 것은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재료뿐만이 아니더라고요. 내 마음도 전하려고 따끈한 항아리를  껴앉아 주었어요. 항아리에 남은 열기가 배에 닿자 스르륵  눈이 감겼어요.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항아리의 열기가 사라졌어요.


  드디어 담가 놓은 된장 통을 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지난번에 보였던 푸릇했던 곰팡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냄새도 괜찮고 맛도 물론 좋았습니다. 메주는 나의 손에서 질척하게 뭉개어져 소독한 항아리로 이사를 갑니다. 처음 된장을 담글 때도 그랬지만 항아리에 된장을 담으면서도 주문을 외웠어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소꿉놀이 같은 첫 된장 담그기는 대행이도 성공적이었어요. 앞으로 더 중요한 건 어떻게 간수를 하느냐이지요. 가시 나지 않고 알뜰히 잘 먹을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잔뜩 가져다 놓은 빈 항아리 중에 적당한 크기의 소독된 항아리에 된장이 채워지고 어머니의 간장 항아리에도 새간장이 채워졌어요. 어머니가 두고 가신 조선간장 위에 내가 만든 아기간장을 부었습니다. 십오 년 된 어머니의 약 간장이 얼음처럼 서걱거리며 새 간장을 기다렸을 거예요. 그  짧은 순간은 마치 엄마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가 계셨다면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을 겁니다.

엄마 간장과 자식 간장이 만난 벅찬 오늘, 성인식을 치른 듯한 감격이 몰려옵니다.


아기를 낳으러 오는 산모들에게 저와 엄마의 손맛이 어우러진 맛있는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미역국을 끓여 줄 거예요. 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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