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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2. 2023

잊은 것들은 반짝인다.

일상

가을과 이별

 벼 이삭이 패이며 가을을 가져 온다. 가라해도, 가지 말라 해도 계절은 아무 말 없이

바람에 익고 햇살에 여문다. 열심히 열매를 내 놓던 토마토와 옥수수가 명을 다했다. 가지를 거두고 옥수숫대를 베어내니 들판이 보인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벼 이삭이 패였다. 우와!

수세미들이 신이 났다. 아침마다 노란 꽃들이 피고 진다. 먼저 핀 수세미 꽃 아래쪽에  아기 수세미가 크기별로 달려 있다. 수세미가 가을에 부지런을 떤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안다는 것은 언제나 신난다.

 내년 이즈음, 또다시 수세미 꽃이 만개한다며 박수를 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할지도. 요즘 들어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반짝반짝'은 새로운 것들에게만 쓰는 단어가 아니다. 새삼스러우면 늘 보아왔던 것들도 반짝인다. 그리 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망각이 오늘처럼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반짝이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햇살 한줌 붙들어 고추가 빨간 옷을 입었다 올 고추 농사는 모종이 좋아서 인지 대풍이다. 옆집 대농이 보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나는 만족스럽다.

 해마다 고추 말리기는 성공한 적이 없었다. 널어놓은 고추는 짓무르고 곰팡이가 생겼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우리 집 농작물은 바람과 햇살의 발걸음이 키워 주었다. 거두기만 했지 여전히 부족한 눈길, 손길에 맥을 놓은 고추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장에 나와 있는 산더미만한 마른 고추들은 혼자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남의 손길과 눈길로 먹고산다는 것을 이제야 터득한다.  

 요 일이년 사이에 시골에 부쩍 친해진 이웃이 생겼다. 농사를 짓는 이웃집에는 농작물 건조기가 있다. 이번엔 그 집에 있는 고추건조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고추를 따고, 씻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처럼 어깨춤을 추었다. 땡볕이 훼방을 놓아도 땀이 줄줄 흘러내려도 거두는 기쁨에 비할 수 없다. 거둔 고추를 들고 이웃집으로 갔다. 몸은 고추의 무게를 느끼지만 뿌듯한 마음에 발걸음이 가볍다. 지난번 맡겼던 바삭하게 마른 고추를 돌려받고 오늘 새로 딴 고추를 다시 부탁했다.

공장처럼 커다란 고추 건조기에는 그들이 거둔 붉은 고추들로 가득 차 있다. 의기양양 들고 온 내 고추를 보며 아낙이 또 웃는다. "애걔!!!"  

 열심히 붉어질 때마다 고추를 따면 올 해엔 고춧가루를 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금씩 저축하는 즐거움이 좋다. 황금 동전이 가득 들은 마른 고추 속을 햇빛에 비추어 본다. 붉은 커튼 속 황금 동전들이 사각사각,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주제로 자서전적 글을 썼다. 그는 마라톤을 뛰는 이유를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온전한 인생” 이라는 말에 마음을 뺏겼다. 온전의 사전적 의미는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다. 고스란히 그대로 있는 자연이 얼마나 될까. 끊임없이 변하고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온전이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대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는 말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온전’은 삶 안에서 이룰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최선과 노력이라는 말은 온전이라는 말보다 실천하기 쉽다.

 고스라니 살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참아내며 온전을 위해 살아간다. 온전치 못해서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 나도 그 중 한사람이다.

굳이 내게 해당되는 온전을 이야기 한다면 스스로 밥을 먹고 제대로 배설할 수 있으며 그것을 처리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지는 요즘, 온전을 쫓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다. 깜빡 잊고 새롭고 반짝여 보이는 것들을 만나면서.     

14 년 된 고양이가 온전치 못하다. 식구들은 고양이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며칠 먹지도 않고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2주 사이 1킬로가 빠졌다. 근육이 많이 빠져서 비틀비틀 걷는다. 먹지 않으니 눈에 띄게 더 말라간다. 무슨 병이 든 걸까? 고양이들은 가끔 탈이 나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기도 하고 동물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가려나 보다!” 나의 한숨 섞인 말에 딸의 눈이 붉어졌다.

 늙고 아픈 고양이를 위해 온갖 비싼 보양식이 배달되었다. 한 조각 먹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평상시라면 먹고 싶어 사족을 못 썼을 텐데. 한입 물고 고개를 외로 꼰다. 아파서 입맛이 사라진 엄마에게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했던 시간이 있었다. 떠나보내고 나서야 모든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먹지 않는 고양이를 보며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속을 비우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사람보다 동물들이 더 고차원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아프다고 울지도 않고 앓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일주일째 그저 내내 잠을 자고 간간히 몸을 뒤척인다. 호흡이 끊어지기가 그렇게 힘이 드나 보다. 오늘 내일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기적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든다. 갑자기 집사 딸이 각오서린 말을 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동물 병원에 데려가 초음파도 하고 할 수 있으면 수술도 시키고 싶다고 했다. 조용히 연명의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명치료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본인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냥 조용히 지켜봐 주기로 했다. 또 코끝이 빨개졌다. 그저 아프지 않고 평안하게 떠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옳다.  

 나도 연명치료는 안 한다고 오래전부터 미리 말해 두었다. 순리대로 살게 된다면 딸은 내 생의 말기를 지켜볼 것이다. 살면서 또 다른 이별의 시간을 만날 때 지금보다 더 나이든 딸이 지혜롭기를 기대해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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