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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25. 2023

누가 누가 더 줍나!

홍천 전원 일기

------------------------------홍천집 찻길 옆에는 커다란 어른 밤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밤 줍기를 좋아하는 나는 추석즈음부터 밤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곤 한다. '밤송이가 벌어졌을까?"

사실 나는 밤을 먹는 것보다는 줍기를 좋아한다. 가을이 오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밤을 노리고 있다. 가끔은 라이벌 의식이 발동한다, '누가 누가 더 줍나' 그러나 그들이나 나나 주된 직업이 있기에 시간을 낼 여력이 없긴 마찬가지다. 농부들은 가을걷이를 하고 조산사인 나는 사시사철 아기를 받는다.

알밤은 사람을 편애하지 않으니 라이벌 의식은 접어두어도 좋겠다. 여문 차례대로 떨어지지 사람 봐가며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바로 앞에 밤을 줍는 사람이 지나갔어도 내 눈에 띄는 밤은 따로 있다. 알밤 줍기에는 그런 통쾌함이 있다.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본다. 밤을 줍는 일에는 간간히 숨 고르기도 필요하다.


이 밤으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다 재래종이다. 말 그대로 알밤인 것이다. 동전 크기정도 될까. 작지만 달다. 작은 알밤은 맛으로 제 값을 한다. 굳건한 자손 내어 놓으려고 토종 알밤은 해마다 열심히 살을 찌운다.

해마다 알밤이 여무는 추석 즈음에

는 아이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하지만 뱃속 아기들은 귀신같이 보름달을 잊지 않는다. 영험함이 더한 추석 보름은 더더군다나. 미신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조산사 선배 중 한 분이 추석에는 놀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하셨다. 일본 조산원에는 달력 날자 아래에 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 조산사들도 달이 살찌기 시작하면 나처럼 모든 약속을 뒤로하고 아기를 기다리나 보다.


지난 40년 간 아기를 받은 나의 소소

한 미신은 무엇일까?

출산이 임박하기 전에는 출산 기구들을 꺼내놓지 않는다던지 목욕재갤 하는 것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터부일 수 있겠으나 미리 미역국을 끓였던 몇몇의 산모들은 난산을 하거나 병원으로 후송을 하곤 했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후부터는 절대로 아기가 태어나기 전 까지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사실 미리 끓여두어 푹 고아진 미역국이 맛있긴 하지만. '달이 살찌기 시작하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가 나중에서야 추가되었다.


밤을 줍는 일보다 아기의 탄생을 돕는 일이 늘 우선이다. 날 가는 줄 모르고 아기를 받다가 밤 줍는 시기를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는 아쉬운 마음에 그냥 밤나무 아래에 잠시 머물기라도 해야 성에 찬다. 밤나무는 나를 위해 몇 개의 알밤을 남겨 두었을 것 같은 막연한 믿음도 있다. 그간 쌓아온 신의를 꺼내 들고 썰렁해진 밤나무 아래 선다.


올해, 추석 보름 즈음 아기들이 태어났기에 자연스레 밤이 여문 때를 놓쳤다. 긴 장화에 장갑과 모자, 기다란 집게까지 들고 때 늦은 밤 줍기를 하러 간다.

"이젠 다 떨어지고 주워가서 없어." 가끔 마주치는 동네 할머니가 말을 건네신다. 철 지난밤나무 아래를 가는 나를 위로하는 목소리다. "그래도 한번 가보려고요."  없으면 없는 대로 즐겁고 있으면 더 좋을 테니 상관없다. 밤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확연하다. 처음에는 속 빈 밤송이 껍질만 보인다. 잠시 앉아 가만히 기다리면 산등성이에서 나무와 풀들을 헤치고 바람이 온다. 냇가의 물소리와 새소리까지 가득 담아 알밤을 만나러 바람이 분다.

이때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감각을 연다. '이제 '그만 떨어져 버려!' 바람의 조언을 들은 농익은 밤이 여기저기서 후드득 떨어진다.

가을바람에 시큼해진 눈은 한 번쯤 비벼야 한다. 또다시 동그랗게 눈을 뜬다. " 알밤아 어디 어디 숨었니?" 목을 기린처럼 길게 빼고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특수부대 못지않은 매서운 눈빛에 알밤이 걸려들었다.

찾았다!

엉덩이가 반질반질한 알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빛난다. 그저 조심조심 갓난아기 보듬듯 밤송이를 평평한 땅 위에 올려놓는다. 밤송이는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며 나를 공격한다. 비명과 탄성이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밤송이에서 알밤을 꺼내면 허리도 아프고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한다.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그만 주워가라는 자연의 신호다. 이제 다음 사람을 위해 하산할 시간이다.

어른 밤나무 다섯 그루는 매해 가을마다 내게 선물을 준다. 내 목의 길이가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것은 그나마 밤나무 덕분인 거다.


밤나무 아래에서 자연의 공평함을 배운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모든 밤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흘러가는 시간에 맞추어 골고루 나누어주는 밤나무는 잉태의 순간부터 사람의 형상을 이루려 애쓰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아기를 받아내며 느끼는 탄생의 감격과 밤 줍기의 환희는 같은 감정이지 않을까. "어머나! 네가 거기 있었구나!" 아기를 받으며 외치는 소리, 밤을 주우며 내는 탄성의 소리는 같은 선 위에 있다.


불룩해진 주머니를 두드리며 돌아오는 발걸음이 흥겹다. 철 지난밤나무 아래에서 가을도, 나도 함께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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