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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y 25. 2023

작약꽃 몸살

홍천 꽃밭 일기

 열흘 전, 만개한 꽃을 보지 못한 채 도시로 돌아오며 몸살을 앓았다. '꽃들이 내가 없을 때 다 피면 어떡하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아직 북적이는 도시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탄생을 돕는 일이다. 답답하지만 아기들이 선택한 탄생의 날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늘 그저 좋은 맘으로 언제일지 모를 탄생의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와중에도 마음 한편엔 늘 꽃들이 자리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꽃봉오리들이 햇살을 만났을까? 하루하루를 조바심으로 보냈다.  

 출산 예정일이 지난 아기가 드디어 태어났다. 아기 받는 일은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지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모른다. 대부분의 출산의 현장은 힘을 모두 쓴 후에서야 끝이 난다. 아기를 받고 나니 꽃을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그런데 남아 있는 기력이 없다. 꽃을 보러 가는 일은 하룻밤을 쉬고 나서야 가능했다.

 꽃을 보러 가는 길은 신이 난다. 저 멀리 숲 속, 짙어지는 초록의 봄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침침했던 눈이 시원하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모든 냄새에는 세상의 모든 봄이 들어있다. 드디어 오른쪽으로 한 번만 돌면 시골집이다.

 종종거리며 마당 구석구석에 피어난 것들을 둘러본다. 열흘 동안 보지 못했던 꽃밭은 폭죽 터지듯 갖가지 꽃잎들을 피워내고 있다. 좁쌀 같았던 열매들도 살이 올랐다. 꽃씨 뿌린 곳엔 아기 떡잎도 다닥다닥 귀엽게 솟아나 있다. 지난번에 뿌리고 간 백일홍 싹, 울긋불긋 늦여름 꽃밭의 주인이 될 거다.

 어머니가 애지중지 가꾸셨던 분홍 작약도 예전 그 자리에 소담스럽게 피었다. 봄의 작약꽃은 내게는 어머니다. 길어야 열흘 동안 피는 작약꽃, 너무나 짧은 만개의 시간이 해마다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든다. 어머니를 보지 못한 채 이 봄을 보낼 수는 없다. 어느 해는 꽃잎이 다 떨어진 후에 시골집에 온 적이 있다. 그 섭섭함이란. 올해는 그래도 제때에 작약을 만났다. 일 년 중에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마친 셈이다.

  벌써 여섯 번째 집을 돌고 있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새로 보이는 만물들이 경이롭다. 놓치고  지나쳐버린 미안함, 꽃 피움에 대한 대견함, 홀로 씩씩하게 솟아오른 용감함에 대한 찬사의 말들. 꽃들에게 주는 나의 작은 선물이다.


핸, 작약꽃 봄 몸살은 쉬이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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