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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30. 2023

소나기, 보슬비, 이슬비

홍천 텃밭 일기

 이웃집에서 준 오이와 우리 집 텃밭 오이(하루에 한 개씩 따먹는)로 오이지를 담갔다. 최초로 항아리에 담근 오이지다. 오이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는다.  소금물 팔팔 끓여 오이가 잠기도록 부어주면  끝. 주의할 것은 오이를 씻지 않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야 노릇해질지는 모르겠다. 경험상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익을까. 노릇노릇 익으면 물을 다시 따라내어 한 번 더 끓인 후 부어줄 거다.

이웃 오이는 cap 오이( 아기 오이에 플라스틱 캡을 씌워 일자 모양으로 자라게 만든 오이), 우리 집 오이는 천연 그대로 꼬부라진 오이. 후자가 훨씬 더 아삭하고 단맛이 난다. 요것은 천연 오이를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다섯 시간이 지나자 오이에서 물이 나와 돌멩이가 들어갈 만큼 줄어들었다. 맛있게 익어라. 주문을 왼다. 한여름  식탁 위엔 어름과 실파가  동동  띄워진 새큼한 오이지를 만난다.


 


  하루 종일 비가 쏟아졌다. 보슬비, 이슬비, 소나기, 모두 모두 종일 돌림노래를 부른다.

 젖은 땅 위에 즐비한 잡초 뽑는 재미를 아는가? 땅속 깊은 곳까지 내려간 뿌리는 종일 내리는 비에 맥을 못 추고 뽑혀 나온다. 온통 흙을 껴안고 있는 녀석, 가늘고 길게 깊숙한 곳에 닿아 있는 녀석, 제각각 모양대로 생명을 잡고 있다. 하루 종일 비 맞으며 잡초 뽑기 명상을 한다. 엄지와 검지가 무슨 죄를 졌을까. 그 아이들만 풀에 베여 까지고 뻣뻣해졌다. 무릎도 이하동문.


 담을 둘러싼 옥수수가 드디어 알을 품고 수염이 자라났다. 방금 따서 쪄먹는 강원도 찰 옥수수. 작년에서야 그 맛을 알게 되었다는 건 ㅠ. 살찌는 여름이 왔다.

낮은 데로 흐르는 물, 잘 흘러가라고 물길을 내주었다. 밭고랑 사이사이 고여있던 빗물이  담장 밖으로 뛰어나간다. 어릴 적 비 오는 날엔 참 많이도 물길 내는 장난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빗물은 똑같이 생겼다. 삼색조팝나무를 지나  청댑싸리를 스치고 메리골드 향기를 품고선 넓은 곳으로 흐른다.


 여름에 피는 나리꽃, 많이 손길을 주지 않아도 홀로 꿋꿋하다. 제자리도 잘 지키고 새끼도 잘 내어 놓는다. 하루에 한 송이씩 하늘로 뻣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주홍색, 초록 논과 마주하니 더욱 고고하다.

이천이십삼 년 유월 이십구 일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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