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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04. 2023

구령 붙여 주세요

아기를 낳다.

  아침 일찍 진통소식을 전해온 가족이 조산원으로 왔다. 예정일은 이미  3일이 지나간다. 늦둥이! 십 년 전 둘째를 낳았다. 아주 잘 낳았다. 내가 둘째를 받았건만 그녀의 출산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훌쩍 십 년 후에 다시 찾아와서 하는 이야기 "저 선생님께 칭찬받으며 아기 낳았어요" 얼굴에서 빛이 난다. 칭찬을 할 정도라면 어떻게 낳았는지 가늠할 수는 있다.

  정결한 몸, 넉넉한 골반, 출산을 받아들이는 마음, 건강한 아기, 새 생명을 맞는 가족들의 기쁜 마음, 그것이다. 행복한 출산을 위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나머지 일어날 일들은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더하여 비타민처럼 효과를 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도다. 온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며 어마어마한 일을 만나는 일만 남았다.

  사실 내가 예상한 출산시간보다 훌쩍 넘어갔다. 산모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지금의 속도도 칭찬해 주어야 한다. 열심히 걷고, 먹는 것을 조절한 모범생도 세월을 이길 수 없다.

  준비한 수중출산 풀에 들어갔다. 따듯한 물 덕분에 진통이 훨씬 줄어든다고 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나자 기운이 빠진다고 한다. 물에서는 아기 낳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남편에게 안기어 힘을 준다. 아무런 개입이 없는 자궁수축은 산모와 아기의 상황에 맞게 강하기도 했다가 슬렁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 리듬에 함께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출렁거려야 한다. 높이 올라갔다 꾸러져 내려오는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싫어도 타야만 한다. 서로가 세상의 단 하나뿐인 진한 동지애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아기의 머리가 슬슬 보이려 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몸은 똑같은 강도로 아기를 밀어낼 수 없다. 무언가를 도와야 할 때다. 혼자만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은 산모에게는 기운 빠지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아기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산모를 위해서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한다.

  길게 힘을 모아야 하는 막판 힘주기는 출산의 절정기이다. 젖 먹던 힘을 모두 모아도 똑같은 도돌이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구원의 절규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다.

"살려주세요.

이젠 더 이상 못하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얼마나 더 해야 해요.

그냥 잡아서 빼 주세요.

아~~ 악"

  산모의 리듬에 맞추어 구령을 할 시점이다.

"심호흡 두 번!

다시 한번 깊게 들이쉬고 숨 참고!

"하나, 둘, 셋, 넷...." 내쉬고 ,

얼른 다시 들이쉬고 숨참고, 하나 둘 셋넷,,,,열

그만!...

이완...!"

진통이 사라지면 정적이 흐른다. 그 시간조차 굳어 있는 눈감고 있는 산모에게는 이완할 수 있는 작은 구령이 필요하다.

"이완! 이완! 편안하다. 참 편안하다. 나는 편안하다"

나의 작은 구령에 어떤 산모는 잠깐 코를 골기도 한다.  

  어느 누구보다 나의 아드레날린 수치 또한 최고로 분출된다. 온갖 털이 곤두서고 눈빛은 예리하게 빛난다. 잠든 산모를 보아도 나의 몸은 막장이며 전쟁터이다.

  짧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는 준비 시간은 또다시 진통으로 모두를 깨운다.

아직 아니야!

호흡도 번!

들이쉬고 내쉬고!

자, 이번엔 숨참고,

기일게... 하나, 둘, 셋, 넷....

옳지!  맞았어!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많은 탄생의 순간은 나의 몸과 마음을 정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출산의 막바지에 기괴한 힘을 발휘하는 다른 여자로 변신한다. 단 한 명의 산모도 나의 구령에 딴지를 건 사람은 없었다. 외려 구령 덕분에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알게 되어 힘이 났다는 칭찬일색일 뿐이다. 단 한 사람, 어떤 병원의 원장은 반말인 나의 구령에 많이 불편해했다. 구령에 존댓말이라, 너무 이상하잖아!

한 고집하는 나는 원장이 불편해 하건말건 힘주는 산모를 만나면 제대로 된 구령은 계속되었다.

  있는 기운을 모두 모아 아기가 태어났다. 예상 시간은 넘겼지만 이만하면 99점이다. 1%는 지루하게 늘어난 시간이며, 산모의 나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기를 만나고 *후산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고된 일을 마친 사람에게 미역국을 내어준다. 그녀의 머릿속에 각인된 십 년 전 미역국맛이 제대로 날지 궁금했다."맛있어요!"쌀 밥 한 그릇이 미역국과 만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늦둥이를 품고 출산 상담을 하러 온 날, 둘째 아기를 낳았던 10년 전에 먹었던 미역국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남편도 잊지 않고 있었다.

" 이번 아가 낳으면 집에서 드실 미역국 좀 더 끓여 드릴까요? " 좋아라 하는 가족들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기로 했다.

  퇴원 준비로 분주해진 저녁 무렵, 갈 채비를 하던 남편이 미역국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나, 깜박할 뻔했네요"  미리 끓여 놓은 10인분의 미역국을 통에 담아주었다.

"선생님! 선생님의 구령은 백만 불짜리예요!!!" 엄지 척을 하는 그녀가 내게 찡끗 눈인사를 한다."이건 남편도 동의하는 거랍니다. 구령 덕분에 아기를 더 쉽게 낳은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후산; 태반이 만출되는 일. 자궁 안에 있는 부속물로서 엄마의 혈액을 아기에게 보내고 받는 일을 한다. 출산 후약5분에서20분 후에  자연스럽게  떨어져 만출된다. 이 때  자궁수축이 약해지면 산모는 출혈을 한다. 자연스럽게 아기를 갖고, 낳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출혈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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