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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Jun 22. 2023

삼 박 사일, 하늘 보는 아기, 행운이를 받아내다.

아기를 낳다.

삼일 동안 진통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행운이가 하늘을 보고 있어서였다. 임신 말기에 초음파로 본 녀석은 ROP(right  occiput posterior : 아기의 후두가 엄마의 오른쪽 엉덩이 쪽에 있는 것 )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행히도 양수가 충분하여 진통이 오게 되면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진통이 시작되어  자궁문이 3센티 열려 있었는데도 아기는 등만 왼쪽으로 바뀐 채 하늘을 보고 있다. 태아 심박동 소리는 좌우 측  모두에서 약하게 들렸다. 아기등이 왼쪽  뒤쪽으로 바뀐 증거는 심박동의 소리크기가  오른쪽보다 왼쪽이 조금 더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결국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측에 있던 아기등만 좌측으로만 바뀐 거다.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는 행운이다.

(조산사는 청진기로 아기의 심박동을 체크할 수 있을 정도로 청력이 민감해야만 한다. 보통은 도플러로 태아심음을 듣곤 하지만 기계음이 아닌 청진기로도 들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해 놓는 것이 좋다. 도플러가 없어도 태아의 안녕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자주 청진기로 태아심음을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기의 등이 온전히 엄마의 왼쪽으로 가야 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자연스레 아기를 낳기로 했으니 나 또한 아기의 결정을 존중해서 느긋하기로 마음먹었다. p position을 T position으로 돌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세만 가르쳐  주었다.

그럼에도 진통은 둘째 날에도 지지부진했다. 간간이 진통이 없어지기도 해서 산모는 쿨쿨 잠을 자기도 했다 모두가 당황스러웠다.

셋째 날 아침, 진통이 강해지지 않는다면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  그런데 여느 날보다 강한 진통이 온다. 자궁문은 5cm로 더 열리기까지 했다.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런. 데...  좀 더 강해진 진통은 더 이상 강해지질 않았다. 밖으로 나가 두어 시간을 걸어도, 그냥 그 모양새다.


또다시 밤이 되었다. 기다리는 것은 내게도 곤욕이다. 힘을 보충하기 위해 열 일을 제치고 두어 시간 동안 잠을 잤다. 꿀맛 같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뜨니 밤 12시가 지나간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기를 받기 위해 새로운 맘으로 목욕재계를 했다. 그리고 나만의 '배짱'을 불러왔다. 양막에 구멍을 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산모의 동의와 그에 따른 설명도 덧붙였다.,


00;30분, 양막이 터지자 맑은 샘물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강한 수축도 함께 시작되었다. 삼십 분 후 7cm 개대, 따듯한 물을 준비하고 수중 출산에 돌입했다. 남편을 깨워 산모 앞에 앉혔다.

아기가 온전히 등을 엄마의 왼쪽으로 돌린 후 고개를 숙여 중간 골반을 통과하기를 기대했다.


또다시 생각보다 힘주기 소리가 나질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더운물에 허리로 오는 진통은 줄어들어 좋았지만 기운이 빠진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서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다.

왼쪽 옆으로 누워 힘을 주었다. 그동안 임신 내내 열심히 운동한 산모의 힘은 다행으로 차고 넘쳤다. 아두가 조금씩 보이고 점점 더 크게 밖으로 아기 머리가 보였다. 머리가 나오는데 아기의 하얀 이마가 보였다.

아뿔싸 후방 후두 위!!! op  position이다.

녀석은 제자리를  찾지 않고 그대로 직진을 한 것이다. 연이어 몸이 나온다. 회음열상을 방지하기 위해 손에 쥐가 나도록 회음을 보호했다. 힘주기 조절도 그만하면 잘했다.

그럼에도, 손에 회음이 찢어지는 느낌이 왔다.

두 번씩이나.

거의 십 년 전에 보았던 op  position, 아기가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고 가족 모두는  즐거워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태반만출과 회음봉합이다. 혹시 모를 출혈에 대비해 더욱 긴장해야 하는 두 번째 고비다.

한참 동안 태반은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아기에게 열심히 혈액을 보내고 있다. 십여분 뒤 태맥은 멈췄다. 아빠가 탯줄을 잘랐다. 고맙게도 태반은 깔끔하게 떨어졌고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아도 자궁은 딱딱하게 수축되었다.

출혈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회음봉합도 예쁘게 잘 마무리했다.


애쓴 아기도 함께 힘준 산모도, 종일 아기의 머리가 보이길 기대했던  나도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주무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애썼다!" 어머님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저절로 돌아가는 시계초침처럼  탄생의 과정도 흐르는 물처럼 끝이 났다. 두 생명 모두 건강하니 삼 박 사 일이 아깝지 않다. 행운이를 기다린 삼 박 사일, 나의 배짱과 그들의 인내가 만든 신비한 출산, 또 한 생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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