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미역국은 홍합국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1994년 남편의 직장이 있는 필리핀으로 이사를 갔다. 의료원 수간호사라는 탄탄한 직업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떠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나도 남편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가족이 함께 한다면 어디서 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슬슬 더운 날씨와 다른 언어에 적응이 되어 갔다.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긴장감은 나쁘지 만은 않았다.

남편의 회사는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다.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면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왔다. 날마다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았다. 외국 주재원의 아내들처럼 나도 자주 쇼핑도 가고 여행도 했다. 아이들은 중국 사립학교에 보냈다. 아이들 학교를 데려가고 데려오고 장 보고, 음식을 만들고, 하루하루가 쉼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사계절이 여름인 나라라서 여름옷이 헤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를 했다. 조금 낡아 보여도 다음 해 여름에 한번 더 입어보려 옷장 깊숙이 넣어두기도 했다. 길게는 다섯 번의 여름을 지내는 옷들도 있었다.

회사의 한국 사람들은 우리 집 부엌을 좋아했다. 특히 생일날엔 싱싱한 해물이 잔뜩 들어간 미역국을 끓여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다. 섬나라인 필리핀의 해물은 무척 싱싱해서 소금 하나 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다. 후식은 항상 누룽지였다. 아떼들은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린 풀들을 먹는 우리를 신기해했다. 아기를 낳고 소모된 혈액을 만들어 내는데 미역국이 제격이라고 했더니 놀란다. 흐물덕 거리는 바다 풀이 미역국으로 변하면 그들도 한 그릇 씩 비우곤 했다.

필리핀에서는 출산 후에 특별히 먹는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홍합 국을 먹는다고 했다. 만약 이곳 마닐라에 안주를 하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출산 센터를 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곳의 산후 음식은 당연히 미역국이었을 거다. 아기 낳고 미역국을 먹는 필리핀 엄마! 생각 만으로도 흐뭇하고 좋았다.

우리 집은 회사와 길 하나를 두고 있다. 길에 나가기만 해도 회사에서 일하는 필리핀 직원들을 자주 만났다. 특히 사무실에서 일하는 Anna는 사무실을 갈 때마다 자주 만났다. 자그마한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같은 회사 Joe가 남편이라며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그녀는 전 남편에게서 두 명의 자녀를 낳았고 이번 출산은 세 번째라고 했다. 덥석 다가가 내가 조산사인데 혹여 출산에 가 봐도 되냐고 물었다. 흔쾌히 함께 하는 것을 허락했고 나아가 아기도 내가 받기로 했다.

병원 검진 결과를 확인하고 준비할 것들을 알려 주었다. 의료 체계가 우리나라보다 앞섰던 필리핀은 벌써 부터 의약 분업이 된 나라였기에 약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약물을 구하려면 꼭 처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어디서 구해왔는지 제법 출산에 필요한 것들을 가져왔다. 필리핀 여자의 출산은 어떨까 궁금했다. 세 번째 아기이니 난산의 걱정은 없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예정일 즈음 저녁에 진통이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기를 받아냈던 직장인 시절처럼 모든 일정은 뒤로 미루었다.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것 하나 만으로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모두 그 장소에 가 있다. 아기를 받아내는 것은 아마 내 유전자 깊은 곳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

그녀의 집은 일반 필리핀 평민들이 사는 곳에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사이 끝에 그들의 집이 있다. 둘이 앉으면 꽉 차는 철재 소파와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방 두 개가 있다. 친구들 세 명이 그들을 도우려 이미 도착해 있다. 친구들은 축제나 생일 파티에 초대 받고 온 분위기다. 걱정 많은 우리네 출산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진통이 제대로 걸리자 작은 어미의 몸으로 아기가 쑥쑥 잘 내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양수에 젖은 건강한 아기가 내 손 위에서 버둥거린다. 아기를 엄마 품으로 안겨 주었다.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그녀가 아름다워 보인다. 걱정했던 회음 열상은 없고 후산 후에 출혈도 없다. 너무 깔끔해서 놀라웠다. 작은 집에, 작은 사람들이, 작은 축제를 하고 있다.

작은 나도 그들과 잔을 들었다. 산모에게 주는 수프는 역시 아테들이 말한 대로 홍합국 이었다. 한겨울 포장마차와 소주 한잔을 생각나게 하는 홍합 국은 뜨거운 동남아의 평범한 산모를 위한 보양식 이었다. 돌아보면, 겁도 없이,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남의 나라에서 아기를 받은 것이 놀랍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나는 똑 같이 아기를 받아낼 것이다. 사람들의 소망과 사랑이 아기와 산모를 살려낸다. 출산은 함께 위로하며 그저 탄생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세상의 반이 여자이고, 대부분의 여자는 아이를 품고 낳는다는 사실! 나의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 어느 곳에 서나 출산을 도울 수 있는 조산사가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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